<부지천의(不知天意)>
연작이 묻되
“옛 말에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고 하였는데, 부산을 떨고 요란을 떤 지가 언제이온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인 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천의(天意)는 밀의(密意)이니, 하늘의 조화(造化)는 정중동(靜中動)이요, 동중정(動中靜)이니라! 비록 인정사량부지천의(人情思量不知天意)라 하나, 만사귀본(萬事歸本)이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은 틀림없이 진실한 이치가 아니더냐!? 누구는 적소(謫所)에 앉아서도 아름다운 사적(史籍)을 쓰며 꽃을 피우는데, 앙앙불락(怏怏不樂)하여 전전불매(輾轉不寐) 전전반측(輾轉反側)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황황망조(遑遑罔措)하여, 황황전전(遑遑戰戰)하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있느니라!” 한다.
연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이어 묻되
“나라마다 군(軍)이 나라를 지키고, 고비마다 호국(護國)의 간성(干城)들이 정충보국(精忠保國)의 충절(忠節)을 드러낸다는데, 이 나라에는 군이 어디에 있고 그 가운데 호국간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국권(國權)이 유린(蹂躪)당하고, 국군의 통수권(統帥權)자가 불의(不義)의 찬역(簒逆)을 당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치욕(恥辱)을 당해도, 담 넘어 불구경하듯 멀거니 바라만 보니, 이 나라에는 군복 입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공무원과 비양심적(非良心的) 병역의무수행자(兵役義務遂行者)들만이 있고, 군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느니라! 그러니 찬역의 무리들이 수많은 이 나라 군인을 죽인 수괴(首魁)들을 초청해 대접하고 놀아나며 국정을 농단(壟斷,隴斷)한들, 마땅히 그를 잡아 처단(處斷)해야 할 군이 없고, 국가위난(國家危難)에도 목숨을 내던질 호국간성이 없으며, 오히려 군복 입은 무리들이 도둑을 몰래 불러들이듯이, 세상이 다 아는 군사작전지역을 통과시키면서도 군사도로가 아니라는 해괴(駭怪)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장성(將星)들도 허락을 받아야만 드나들 수 있는 군사도로를 열어, 적들이 들어오는 샛길을 열어주니, 이제 나서야하 는 것은 민초(民草)들밖에 더 있겠느냐!?” 한다.
연작이 재차 묻되
“잔치가 파(罷)하였으니, 뒷정리는 누가 하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어차피 주인 없는 잔치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객들만 모여, 눈치싸움만 하고 탐색(探索)을 벌였으니, 남은 일이야 나라 밖에서는 이미 물밑 작업에 계산된 악구험담(惡口險談)과 어깨싸움 뒤에 벌어질 주먹다짐밖에 더 있겠느냐? 그리고 나라 안에서는 기미(己未)년 3.1절이, 천지를 개벽(開闢)하는 도화선(導火線)이 될 무술(戊戌)년 3.1절로, 그 이름이 뒤바뀌는 일밖에 더 있겠느냐!?” 한다.
연작이 연이어 묻되
“이번 잔치에서 펜스가 물을 먹었다 하기도 하고, 여정이가 물을 먹었다 하기도 하며, 이방카와 영철이를 내세운 고무줄놀이가 선보였다는데, 그 내막이 무엇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글과 말을 따르는 것 보다는 글과 말에 담긴 뜻을 살필 줄 알아야 하듯이, 세상의 모든 일도 그러하느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세월 세상을 주무르는 것은, 물 먹이고 물 먹은 척 하는 수법이 남달랐기 때문이 아니더냐? 지금 트럼프가 과거에 북(北)을 잘못 다루는 우(愚)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은, 과거에는 한 냥을 쓰고 두 냥의 이문을 취하였으나, 지금은 백 냥을 쓰고 천 냥의 이문을 남기겠다는 것이니, 씀씀이가 크고 얻는 것이 많으면 자연이 판세가 흥청거리니, 비록 도인(道人)이라도 사람마다 드러내는 운치(韻致)가 남다르듯이, 그것이 정치가(政治家)의 운치가 아니겠느냐!? 그리고 어느 아이가 서쪽으로 가고, 어느 아이는 북쪽으로 가며, 성동격서(聲東擊西)를 흉내내었다 하나,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히려 성동격서를 성동격서로 삼아 동탄서작(東譠西謶)에 남기북만(南欺北瞞)하며, 첩첩은산(疊疊隱算) 중중지계(重重之計)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쓸 줄 아는 나라이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무엇이 양심(良心)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본시 양심이란, 사람의 착한 보편적 심성(心性)을 바탕으로,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과 선악을 깨달아, 행행처처(行行處處)에 삶을 바르게 행하려는 마음을 말하나, 시절이 수상(殊常)하니 사람마다 양심의 잣대가 달라 일마다 시비(是非)이니라! 그런 연고(緣故)로 군에 가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양심적 병역의무수행자가 되어, 양심적 병역의무거부자(拒否者)를 지켜주는 수고를 감당(堪當)하는 희한(稀罕)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기차간에서 노래부르며 껌팔이 하듯, 기차간을 오르내리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노래하고 선전하던 자가, 자유주의국가의 대통령묘역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역사를 왜곡(歪曲)하여, 철모르는 어린 심성들을 눈멀게 하기도 하느니라!”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지난날 중국의 서성(書聖)이라 일컫는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는 비인부전(非人不傳: 예와 도를 논함에 있어, 능히 감당하여 바로 쓰고, 바로 베풀 양재良材가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말)이라 하였는데, 지금의 세상에는 학문과 치도(治道)를 비롯하여, 매사(每事)에 전하고 받는 일에 어찌 가림이 없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인사(人事)를 도모(圖謀)함에 있어서, 지난날에는 양재(良材)를 가려 바탕을 살핀 연후(然後)에, 기틀을 다지고 초석(礎石)을 놓아 양재(養才)를 하였으나, 이제는 부재승덕(不才勝德: 재기才技가 덕을 가릴 수 없고, 또한 재기가 덕을 가려서도 안 된다는 말)이라는 가르침은 옛말이 되어, 지금은 여우, 원숭이들이 먼저 눈앞의 이익을 살피고, 남의 쌈지 속을 가늠한 연후에 비천(鄙賤)한 기교(技巧)를 보이는 것을 능사(能事)로 삼느니라!” 한다.
연작이 이어서 묻되
“지난날 수행자들은 때때로 이정표(里程標)가 의심스러울 때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묻기를 ‘언계(偃溪)의 물소리는 요란한데, 총림(叢林)에 들어서니 갈 길이 묘연(渺然)합니다. 길을 일러 주십시오!’ 하며, 진실로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결판(決判)을 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勝負手)를 청(請)하고자, 선지식을 닦달하여 붉은 핏덩이를 토(吐)하게 하고서, 그 토하는 핏덩이를 뒤집어쓰기를 자청(自請)하기도 하였다하는데, 지금은 이정표는 고사하고, 도무지 눈앞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 어디를 향하여 삼배를 올리고 길을 물어야 하나이까?” 하니
홍곡이 홀연즉응(忽然卽應) 흠칫하며, 몸을 바로하고 이르기를
“네가 한낱 연작에 불과한 줄 알았더니, 그런 가상(嘉尙)한 뜻이 있었더냐!? 큰 스승이 이르시기를,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일체상이 상 아닌 줄을 본다면)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 즉시 여래를 친견한다.)라 하였으니,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스스로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줄 알듯이, 생사의 물결 속에 앉아서, 어찌 눈을 뜨고서도 부질없이 눈앞의 허망(虛妄)함을 두고 연연(戀戀)하느냐!? 뜻이 그러할진대, 이미 언계의 물소리를 들었으면 자연히 들고 날 길을 알지 않았더냐!?” 한다.
연작이 옛일을 추상(追想)하여 묻되
“덧칠을 알아보는 눈은 어떻게 기르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오래전 무등야구장 앞에는 급박한 달구(達丘)의 백성들이 숨어든 수정여관도 있었고, 동남도(東南道)의 차들이 어느 강다리를 건널 때는 총알이 빗발치듯 하기도 하였고, 어느 곳에는 천군(天軍)을 가장한 악당들이 군막(軍幕)을 친 학당(學堂)도 있었고, 그 천군을 대접하여 공을 세운 자들은 이미 부토(腐土)가 된 지가 오래 전이나, 지금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한 자들이 배를 두드리며,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있느니라!” 한다.
자!
무생(無生)이요 무주(無住)라 자연히 무상(無相)이니, 각소(覺所)도 의지할 수 없고, 의소(意所)도 의지할 수 없고, 심소(心所)도 의지할 수가 없고, 공소(空所)도 의지할 수가 없다. 무엇으로 눈앞을 가늠하겠는가!? 궁구하고 궁구하여 각자의 허물을 드러내 보라!
<작성 - 2018년 2월 26일(음력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