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5일 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11관


<장부(丈夫)>

연작이 묻되
“무엇이 장부의 풍도(風度) 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비록 천고만난(千苦萬難)을 만나고, 천요만악(千妖萬惡)이 앞을 가로막아도 초연(超然)하여, 시절풍운(時節風雲)을 밝게 살펴 천의준명(天意峻命)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장부의 본분사(本分事)이니라! 장부가 어찌 한낱 담 밖의 함성(喊聲)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세풍향(時勢風向) 따위를 가늠하겠느냐?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그 누가 막겠느냐? 영원토록 피고 질 이 땅의 무궁화(無窮花)는, 매서운 설한풍(雪寒風)에도 의연(毅然)한 옥중화(獄中花)요, 만리향(萬里香)을 내뿜는 옥중화의 초절(超絶)한 절의(節義)는, 만고(萬古)에 길이 빛날 장부의 풍도이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진실한 이치일진대, 어찌하여 눈앞은 이렇듯 암울(暗鬱)하기만 하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사람의 일은 비록 믿을 바가 못 되나, 천리(天理)는 속임이 없느니라! 크게 무릎을 치며, 진실한 이치가 틀림없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바른 이치인 줄을 알아차릴 때는, 이미 시절(時節)은 아리랑고개를 넘고, 세사(世事)는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있느니라! 공연히 앙앙불락(怏怏不樂)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일은 모두가 부질없음이니, 그러니 사람이 할 일이란, 화란춘성 만화방창(花爛春盛 萬化方暢)에 때가 되면, 춤추고 노래하는 일 밖에 더 있겠느냐!?”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노웅(老雄)이 다시 기치(旗幟)를 세우는 뜻이 무엇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비록 오랜 풍상(風霜)에 우수(迂叟)의 몸일지언정, 생도(生徒)의 뜻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한결같으니, 이를 일러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 하고, 그것이 장부가 가야할 정도(正道)이니라!” 한다.

연작이 옛일을 떠올리며 묻되
“대의정로(大義正路)가 사람의 근본일진대, 큰 그림을 펼쳐놓고 국가와 민족의 만년대계(萬年大計)를 도모할 때,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에 눈이 어두워 흉계(凶計)만을 일삼던 적도(賊徒)와 간도(奸徒)들이, 오히려 득세(得勢)하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밝고 밝은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감춤이 없다 하더라도, 비록 유유히 흐르지만, 장강의 물밑을 누가 아느냐!?” 한다.

연작이 지난날 삼소굴(三笑窟)의 고사(古事)를 들어 묻되
“경봉노사(鏡峰老師)께서 가신 지도 오래이옵고, 이제 백수(百壽)를 넘긴 빌리(Billy)마저 갔으니, 한 말씀 여쭙고자 하나이다. 옛일이 적은 일이 아닌데, 어찌하여 한 사람도 본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는 듯, 지금까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본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는 옛일을 한낱 연작인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마음은 안팎이 없다는 그 말은 은밀(隱密)히 회자(膾炙)될 일이나, 그것이 바로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것이니라! 그러나 비록 제2의 메시아(Messiah)라 추앙(推仰)받던 그가, 이 땅에서는 사이비(似而非)란 이름을 얻고 돌아가, 50여년 가까운 긴 여생(餘生)을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가 갔으나, 그곳에서는 만인의 정신적 지주(精神的 支柱)가 되었으니, 그 은밀한 내막은 당사자(當事者)도 알지 못 하느니라!” 한다.

춘산만화(春山萬花) 함께 자지러져도 웃음소리 들리지 않고
두견(杜鵑)은 밤새워 슬피 울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자!
눈앞을 바로 보라!
대나무 그림자는 뜰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죽영소계진부동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은 바다를 꿰뚫어도 물결에는 흔적이 없다.
(월광천해파무흔月光穿海波無痕)
밝고 밝은 눈앞을 두고, 또다시 무엇을 궁구한다 하겠는가!?

<작성 - 2018년 3월 5일(음력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