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6일 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14관


<미망(迷妄)>

연작이 묻되
“5천만의 인구가 5백만이 될 날이 바로 눈앞인데, 이 나라가 가는 길이 과연 어디 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인간의 욕심(慾心)과 분노(忿怒)가 부른 전쟁의 참화(慘禍)가 세상인구를 조절하기도 하고,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부른 자연재앙(自然災殃)이 세상인구를 조절하기도 하나, 세상 스스로가 어리석음이 극(極)에 달하면, 시절이 절로 세상 가는 길을 이끌어 가기도 하니, 그를 일러 계세(季世)요 말세(末世)라 하느니라. 필경(畢竟)에는 무명(無明)의 어두움이 바탕이 되고, 탐(貪)ㆍ진(瞋)ㆍ치(癡) 삼독(三毒)이 부르는 탐욕(貪慾)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부르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재앙이, 멸진(滅盡)과 신생(新生)의 조화(調和)를 이루느니라.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이는 것이 이치일진대, 그 이치마저 저버리는 계세가 눈앞이니 어찌하랴!? 이제 곧 사람이 만든 요물(妖物)이 오히려 사람을 닦달하여, 제발 사람답게 살라는 눈물겨운 세상이 오리니, 그때가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는 세상이 되니, 천만요행(千萬僥倖)으로 찾을 수가 있다면 동진귀본(同盡歸本)만이 은밀히 안배한 길이니라. 8천만 5천만도 하나가 되어야 나라다운 국권(國權)을 유지하는데, 나라인구가 2-3천만도 안 되는 시대가 곧 눈앞이요, 수백만 인구가 코앞인데도, 분권을 운운하며, 가르고 쪼개어 권력을 갈라먹기에 혈안이 된 자들이 앞뒤를 분간 못하니, 눈을 뜨고도 전조(前兆)를 보지 못한다면, 금수(禽獸)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수십만 수백만이 모여서 이리 쫓기고, 저리 도망 다니다가, 여러 우두머리들이 모여서 이룬 것이 백제(百濟)요, 여러 우두머리들이 모여서 화합하여 이룬 것이 화백(和白)의 나라가 신라(新羅)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 수많은 제후(諸侯)가 흩어지고 백두(伯頭)가 흩어지니 그 결말이 어떠하였던가!? 일찍이 대영제국(大英帝國)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꿈꿨으니, 아직도 그 광영(光榮)이 빛나지 않느냐!? 지금 눈앞의 참상(慘狀)이 이러한 원대(遠大)한 뜻을 세운 선각(先覺)의 뜻을 알지 못하는 무리들이,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니, 참으로 통탄(痛嘆)스럽지 않느냐!?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가 시대로만 알고 시절을 모르니, 소슬(蕭瑟)한 시절풍운(時節風雲)에 망운지회(望雲之懷)를 어찌할꼬!?”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무엇이 순리(順理) 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사람이 태어나 첫 꽃을 피우는 이팔청춘(二八靑春)을 지나 젊음을 구가(謳歌)하다가, 늙음을 눈앞에 두면 가는 젊음이 아쉬워, 잠시 몇 년간 다시 젊어지듯 꽃피우는 석홍명화(惜紅明華)가 나타나고, 때가 되어 갈 때가 되면 몸져누웠다가도 잠시잠깐 명현반조(明顯返照)가 나타나듯이, 나라가 망할 때도 잠시잠깐 열성조(列聖朝)가 명혼진력(冥魂盡力)을 다하고, 호국혼(護國魂)이 안간힘을 쓰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때가 있으니, 역리(逆理)인 듯이 보이는 이것이 모두 순리 가운데의 일편상(一片相)이라, 지혜의 눈이 없으면 역리와 순리가 뒤바뀌어 스스로 명운(命運)을 재촉하니, 순리란 말로써 이를 수 있는 것이 못 되느니라!” 한다.
연작이 연이어 묻되
“그러면 무엇이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악독한 마음을 품고 계획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쳐도, 나랏돈으로 먹여 살리며 편안한 여생을 즐기게 하는데, 술에 취에 개를 한번 걷어찼다고 동물학대죄로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세상이니, 죽은 자의 인권(人權)은 개권보다 못한 것이 아니냐?! 법조인들의 지엄(至嚴)함이 이러하고 대가리가 이정도인데도, 이러한 세상에 순리대로 사는 일을 운운하니, 정녕 네가 가상하구나! 그러나 내가 사는 달구(達邱)에 어느 소문난 보신탕집에는 점심때가 되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대는데, 그 중 열에 일곱 여덟은 인권보다 개권을 중시하는 그 지엄하신 법조계의 인사들과 사복 입은 경찰관들이니라.” 한다.

연작이 무엇에 상심(傷心)한 듯 추연(惆然)히 묻되
“배고파 서럽고, 추워서 힘들던 시절에도 하늘빛은 이렇게 어둡지가 않았는데, 오히려 칠흑(漆黑)같은 어둠속에서도 오히려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배를 두드리는 우치(愚癡)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이까?” 하니
홍곡이 길게 탄식(歎息)하고 이르되
“시절(時節)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성상(星霜)을 지어가니, 이를 일러 세월(歲月)이라 하느니라! 스스로 어지러우니 풍진세상(風塵世上)이요, 까닭 없이 스스로 어리석으니 난화지민(難化之民)이라 하느니라! 비록 눈물을 보이지 않고, 소리 내어 통곡(慟哭)하지 않으나, 장부의 한(恨)은 구천(九泉)에 사무치고, 구천(九天)을 놀라게 하니, 업장(業障)은 짓고 받는 바에 따라 별별종종(別別種種)이나, 조상(祖上)을 속이고 선열(先烈)을 노(怒)하게 한 죄는 선 자리에서 받느니라!” 한다.

무명초(無名草) 자른 둥근 머리 스님과
반야초(般若草) 기른 흰머리 속인(俗人)이 함께 길을 가니
나비는 머리 위를 날며 함께 춤추고
방초(芳草)는 저마다 허리를 젖혀가며 소리 없이 웃는다.
석 섬의 기름을 나무 위에 붓기가 어렵고도 어려우니
풀끝마다 조사(祖師)의 뜻이라 쉽고도 쉽도다!
목마르면 물마시고, 추우면 옷입고, 피곤하면 잠자니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하네!
공연히 그 누가 한 기틀을 두고 우열(優劣)을 논하고
부질없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일삼는가!!!

<작성 - 2018년 3월 26일(음력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