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6일 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17관


<표훈(表訓)>

연작이 묻되
“무엇이 관행(慣行)이고 무엇이 적폐(積弊)이며, 생전 처음 듣는 국민의 평균도덕성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내 새끼들이 저지른 것은 관행이라 하고, 남의 자식이 저지른 것은 적폐라 하느니라. 힘이 내 손에 있으면 국민의 눈높이가 곧 내 눈높이니, 그 눈높이에 맞추어 관행과 적폐라는 이름이 정해지고, 마음에는 없어도 이재손익(利財損益)과 시세변천의 낌새에 따라, 더러는 눈높이가 억지로 조정되기도 하느니라. 그런 까닭에 국민의 평균도덕성이라는 말은 사람이 사람답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기본도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들의 개차반 같은 행동기준이 곧 힘 있는 자들의 평균도덕성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곧 눈치이니, 아무리 귀엽고 아끼는 자식일지언정, 우리 귀여운 새끼 기식이의 앞날도 문밖에서 들려오는 악다구니와 문도(門徒)들의 손익계산서에 따라 정해지느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무엇으로 후대에 표훈(表訓)으로 삼아야 합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울울총림(鬱鬱叢林)에 적조벽월(寂照碧月)이로다. 지난날 후원에서 나무 심는 황벽희운(黃蘗希運)스님에게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가 ‘나무는 무엇 때문에 심느냐?’ 하니, 황벽이 답하기를 ‘후대에 표훈을 삼고자 합니다.’ 하였느니라.”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무엇이 불변의 고금훈(古今訓)이고, 무엇이 시절방편(時節方便)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다례(茶禮)와 제례시(祭禮時)에 생식진설(生食陳設)・화식진설(火食陳設)과 동두서미(東頭西尾)・삼적(三炙)・삼전(三煎)・삼탕(三湯)은 고금(古今)의 예법(禮法)이요, 편대(䭏臺)의 크기와 편층(䭏層)의 높이를 정한 법은 나라법이며, 생과조과(生果造菓)・조율이시(棗栗梨柹)・홍동백서(紅東白西)・좌포우혜(左脯右醯)와 좌면우병(左麵右餠)・생동숙서(生東熟西)・좌반우갱(左飯右羹)・건좌습우(乾左濕右)와 본편(本䭏)위로 오색편(五色䭏)・삼색편(三色䭏)・오색절편(五色切䭏)・삼색절편(三色切䭏)과 오색삼색(五色三色)의 부편(烰䭏)・인절미(仁絶味, 引節味)・경단(瓊團)・주악(조각造角)과 철따라 다른 색색화전(色色花煎)과 종종(種種)의 육적(肉炙)・어적(魚炙)・소적(素炙, 蔬炙)과 별별(別別)의 육전(肉煎)・어전(魚煎)・소전(素煎, 蔬煎)과 각각(各各) 다른 이종별재(異種別材)의 육탕(肉湯)・어탕(魚湯)・소탕(素湯)은 가가예문(家家禮文)이니라. 그리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조상의 휘자(諱字) 앞에 학생부군(學生府君)과 처사부군(處士府君)이라 함은 그 가문의 자존(自尊)과 기개(氣槪)를 드러내는 것이니라. 그 가운데 학생(學生)이라 함은 비록 이루지는 못했으나 명리(名利)라 하기에는 과하나 분명히 치세(治世)에 뜻이 있었음을 말함이요, 처사(處士)라 함은 애초에 명리와 치세를 달관(達觀)하여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에 뜻을 두지 않았음을 뜻하니라.” 한다.

연작이 이어서 묻되
“지난날 선생께서 노래 부르기를, 공산명월수조성(空山明月水鳥聲, 공산에 달 밝은데 물새소리로다.)이라 하였는데, 그 노래가 봄노래입니까? 가을노래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분별하고, 객빈좌석(客賓座席)을 구별하면 가곡(歌曲)이요, 팔다리가 휘젓는 대로 불러도 탓하는 이가 없으면 가요(歌謠)라 하느니라. 시대가 곡조(曲調)를 원한다고 어찌 시절이 장단을 마다하겠느냐? 음율(音律)에 맡기면 나라가 편하고, 가락에 맡기면 민초가 편하니, 만병통치(萬病通治)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은 만고(萬古)에 이르도록, 아직까지 그 이름만 전해지는 희물(稀物)이니라.” 한다.
또다시 적막함이 오래이더니 이윽고 홍곡이 이르되
“이 중(僧)도 찾아와서 묻기를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오?’ 하고, 저 중도 찾아와서는 ‘조사서래의’를 물으니, 이 중에게는 말하기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하고, 저 중에게는 이르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다. 이 중도 옆구리가 아파서 와서 묻고, 저 중도 옆구리가 아파서 와서 물었는데, 의원이 보기에는 서로가 아픈 원인이 다른지라, 이 중에게는 ‘뜰 앞에 잣나무’라는 약을 주고, 저 중에게는 ‘대문니에 털이 난다.’는 약을 주어 병을 낫게 하였으니, 가히 명의(名醫)는 명의로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않더냐!? 만병통치약이란 이 중도 저 중도 찾아와서는 어째서 허리가 아픈지를 묻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니라! 그러니 그런 까닭을 모르고, 의원도 병자도 모두가 구하기 어렵고, 한번 구하여 치료하면 다시는 생(生)・노(老)・병(病)・사(死)를 겪지 않는 만병통치약은 제쳐두고, 우선 급하고 편한 임시치료약을 주고받으니, 무엇이 명상이고 무엇이 진참수행(眞讖修行)인 줄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느니라. 의식은 아무리 맑혀도 꿈속이요, 의식을 의지함을 벗어나면 꿈자리의 일들은 흔적자취가 없느니라. 그런 줄도 모르고, 나라에서는 연구기관에 돈을 들이고 공을 들여 ‘어찌하면 좋은 꿈을 꾸고, 꿈자리를 마음먹은 대로 꿀까?’ 하는 명상연구를 시행한다 하니, 이제 가는 길이 막다른 길이 아니더냐!? 명상으로는 의식체계를 의지한 현상의 가상(假相)이 보이나, 의식을 여의면 현상의 진실상(眞實相)이 보이는 줄을 모르고, 그 잘못 보는 것이 거짓된 자아인 의식이요, 바로 보는 것이 자기주인공(主人公)인 줄을 알지 못하니, 장차 나아가는 길과 벌어질 일이 무엇이며, 이들에게 무엇을 부촉(咐囑)하겠느냐!? 어리석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인재(人材)를 길러야 할 학당을 차지하고, 탐욕스러운 무리들이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할 치도(治道)를 가로막으니, 선 자리가 부끄럽고 가야할 길이 막막하지 않느냐?” 한다.

공산(空山)에 달 밝으니 심심적경(深深寂更)이로다!
창연벽공(蒼然碧空)은 조요(照耀)한데
훈풍(薰風)은 달빛을 흔들고
홍도화(紅桃花) 꽃가지는 창살을 두드리네.
나그네 객수(客愁)는 고금(古今)을 나누지 않으니
허다(許多)한 인연(因緣) 누대(樓臺)에 올랐으나
그 누가 소쩍새의 눈물을 보고
그 누가 앵도화(櫻桃花)의 웃음소리를 들었는가!?
문향(門香)은 흩어지고 치도(治道)는 무너져 분별없는 시절이라
입향조(立鄕祖)의 어진 옛 뜻은
봄마다 종택(宗宅) 앞 늙은 홰나무 가지에서 피고
건곤일척(乾坤一擲) 건국조(建國祖)의 장한 옛 뜻은
쓸쓸한 옥중화(獄中花)의 가슴에서 피는구나!!!

터를 정하고 자리를 다듬어
행목(杏木)을 심고 홰나무(槐木)을 심는 뜻이
자자손손(子子孫孫) 명리(名利)를 위함이고
번영득세(繁榮得勢)를 위함인 줄 알았더냐!?
무엇이 부모의 뜻이고
무엇이 조상의 뜻인 줄을 꿈에도 모르다가
부모가 가고도 하세월이 흐른 후에야
몸은 우수(迂叟)가 되고 백발(白髮)이 휘날리며
이제 제 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회심향도(回心向道)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지만은
그래도 어렴풋이 눈앞을 어른거리는 것이 있으니
그제서야 무슨 득도(得道)나 한 듯이 오두방정을 떨며
자식손자 불러놓고 별별 소리를 늘어놓으니
갈 때가 다 된 치매 걸린 늙은이의 공설(空說)밖에 더 되는가!?
내려다보니 조상은 면목이 없고
바라보니 산천(山川)은 참괴(慙愧)하니
지랄도 가지가지라더니
참으로 참람(僭濫)한 참경(慘景)이로다!

살아온 바 대로 지어온 바 대로
오고가며 받으면 그뿐이건만
그래도 사람 몸 받은 본성(本性)이 그것이 아니니
힘이 다한 사지(四肢) 끝에 남은 기운이
무어라도 부여잡고 나누고 싶은 하소연이야
어찌 없다 하겠는가!?
놓고 놓아버리고 다 내려놓고
쉬고 쉬어버리고 또 쉬어 쉴 곳마저 다하면
들리느니 성외일음(聲外一音)이요
보이는 바 묘진색(妙眞色)이로다!!!

<작성 - 2018년 4월 16일(음력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