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3일 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18관


<자승자박(自繩自縛)>

연작이 묻되
“무엇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그 누가 오라고 절박(切迫)한 기별(寄別)을 보냈더냐!?
그 누가 와 달라고 절절(切切)한 사연 적어 간곡(懇曲)히 부탁(付託)을 하더냐!?
무연(無緣)히 까닭 없이 홀기무명(忽起無明)하여 부처와 중생으로 갈라서더니
일없이 궁금하고 일없이 좀이 쑤셔 스스로 와서 스스로 붙잡히고
스스로 나투어서 스스로 묶여서 옴짝 달싹 못하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느냐?!
지난날 원효(元曉)노인이
‘나지마라 죽는 것이 괴로움이요, 죽지마라 나는 것이 괴로움이다.’ 하니
12살짜리 사복(蛇福)이 무슨 그런 너절하게 긴 법문이 있느냐며
한마디로 잘라서 ‘생사는 모두 괴로움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주장자(拄杖子)로 등짝을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차려보니
무생(無生)ㆍ무사(無死)ㆍ무주(無住)ㆍ무상(無相)에 무심(無心)이니
본무생사(本無生死)에 본무진속(本無眞俗)이 아니더냐!?
본무생사 본무진속에 무슨 자승자박이 있겠느냐?
하물며 꿈속의 일이 아니더냐!?
꿈을 깨고 나면 꿈속의 일을 어디에서 찾겠느냐?
꿈에는 별별 고상한 꿈이 다 있으니
그 가운데는 이 꿈 저 꿈 다 꾸다가 필경(畢竟)에는
이제는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꿈을 꾸기 시작하는 무리들이 있으니
이는 그 누구도 깨울 수가 없는 고약한 꿈이니라.
그러니 세상에는 비슷하나 아닌 병은
천하의 명의(名醫)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 하느니라.
모두가 눈앞에 천지사방(天地四方)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이니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요?
누구의 건과(愆過)이더냐!?
눈멀고 귀먹은 채
세세염념(細細念念) 끝없는 생사의 물결 속에 앉아
눈앞은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 업식인연(業識因緣)이니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탄(歎)하겠느냐!?
내가 잠깐 내 육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늙은 힘에 과하게 자전거에 짐을 싣고 언덕 밑에 다다라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무려 한 시간이나 앉았다가
결국은 짐을 내리고 세 번이나 나누어 오르내리며 언덕을 올랐다.
지난날 내가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지나가던 어느 젊은이가 달려오던지
아니면 동년배(同年輩)의 늙은이라도
서로가 거들고 도움을 베풀던 시절이었건만
그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단 한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오늘의 세태(世態)이다.
서글프고 서럽고 앞날이 안타까워
우러러 한탄(恨歎)하고 굽어 속죄(贖罪)하다가
문득 저 멀리 아득히 밟아온 자취 바라보니
‘자업자득이 이것이구나!’ 하여 절로 쓴웃음이 나더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작금(昨今)에 사랑채의 재미에 미련을 못 버려서 아랫것들과 저지른 호작질이 빌미가 되어, 천것들에게 욕을 보는 어느 중늙은이의 일은 자승자박입니까? 자업자득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내가 이제야 비로소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알리요!’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연유를 알겠구나.”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떤 무도한 자가 소리 높여 힘주어 말하기를 ‘갑질문화는 적폐이다. 이는 국민들이 용납 못한다.’ 하는데, 도대체 어느 놈연들과 어느 연놈들이 저지르는 것을 갑질이라 하나이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증거가 없어도 정황상 그러하다 하고 힘으로 눌러 덮어씌워, 찬역(簒逆)을 정당화하는 것이 역도(逆徒)들의 갑질이고, 아무리 난동(亂動)이고 폭동이라도, 젊고 어린 얼치기들을 앞세워 촛불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서, 목적을 달성하고 판을 차지했으면 혁명(革命)이라고 우기는 것이 역도들의 갑질이며, 나라를 지키자는 국방의 길목을 가로막고 협상을 운운(云云)하는 짓을 역도들의 갑질이라 하는 바, 이러한 갑질은 갑질 중에서도 상질(上質)이라 하여 악질(惡質)이라 하느니라.” 한다.

연작이 작금(昨今)의 요상한 일을 들어 묻되
“절대 비핵화선언후(非核化宣言後)에 당했다는 카다피처럼 되지 않겠다던 정은이가 갑자기 비핵화를 이야기한다며, 남쪽의 주구나팔수들이 비핵화의 첫 단추를 꿰었다고 나발을 불어대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이미 미사일을 쏠대로 다 쏴보고, 핵탄두도 필요한 만큼 다 준비해두었으니, 이제다시 없는 돈 들여서 또다시 미사일을 쏘고, 핵을 더 만들 필요가 없으니 비핵화를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냐? 그리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것도 방사능으로 오염될 대로 오염된 곳에 더 무엇을 하겠느냐? 지난날 영변 원자로 폭파쇼를 보여준 지가 불과 몇 년이 지났느냐? 그러니 정은이가 말하는 비핵화라는 것은, 이 땅에서 핵을 없애자는 비핵화(非核化)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이미 다 준비된 미사일과 핵을 비밀리에 관리하자는 비핵화(秘核化)가 아니겠느냐!? 남쪽의 주구나팔수들이 어찌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하는 소리이겠느냐!? 다급하니 아무 포장지나 덮어씌워 내미는 꼴이 아니겠느냐!?” 한다.

거울 앞에 소가 지나가니 소가 비춰지고
거울 앞에 사람이 지나가니 사람이 비춰진다.
천형만물(千形萬物)이 지나가도 다만 그대로 비출 뿐
거울이 언제 소라는 생각을 내고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었던가?!
종종별상(種種別相)이 각각형모(各各形貌) 만태천상(萬態千相)이니
바로 눈앞의 일이요
만종별상(萬種別相) 천양별태(千樣別態)가 일합상(一合相)이니
바로 그대로 눈앞이로다.
육상(六相)이 별별난만(別別爛漫)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니
바로 눈앞의 만상(萬相)이요
육상이 원융무애(圓融無碍) 일원상(一圓相)이니
곧 바로 눈앞이로다.
공들여 삼계(三界)를 벗어나보니 삼계일진대
눈앞의 이 일을 두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본시(本始)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닌 것을 하나라 하니
결국은 그 하나가 둘로 갈라져 일체가 대대(對對)이라.
천태(千態)가 그러하고 만상(萬象)이 그러하니
자리마다 마음 마음이 달라 빈부귀천(貧富貴賤)이 그러하고
진망(眞妄)이 그러하여 생사(生死)마저 그러하니
잠간 허깨비를 본 듯이 일어나니 부처요 중생이요
잠시 모였다 흩어지니 생사로다!
삼계(三界)는 마음이요, 만법(萬法)은 식(識)이니
불꽃 일어나듯 건립(建立)하니 마음이요
일체가 그 가운데 일이 아니던가!!?
손잡고 춤을 춰도 각각 장단이요
품에 안고 같이 자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니
고고봉정(高高峰頂)에 은파랑(銀波浪)이요
심심해저(深深海底)에 기홍진(起紅塵)이로다.

<작성 - 2018년 4월 23일(음력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