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
연작이 묻되
“제가 비록 미물(微物)의 몸을 받아 태어났으나, 입은 은혜가 막중(莫重)한데, 무엇으로 보은을 해야 허물이 남지 않겠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달빛아래서 반딧불이 밝음을 자랑한다더니, 어찌 네가 나의 허물을 그렇게 빗대어 나무라느냐? 하기야 토막글로 문자(文字)를 빗대어 늘어놓고서 문학상 소식을 기다리고, 땡초가 땡초를 벗어나 면창피(免猖披) 했다고, 월초면피(越初免披)대사라 칭(稱)한다는 세상이니, 내가 어찌 너를 탓하겠느냐!? 그러나 내가 누누(累累)이 이르지 않았느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장부지도(丈夫之道)의 당연지의(當然至義)요, 식심견성일체제중생(識心見性一切濟衆生)은 출격장부(出格丈夫)의 대본분사(大本分事)이니, 설 자리 앉을 자리를 바로 알아, 은혜를 바로 아는 것이 은혜를 바로 갚는 일이요, 일체를 내려놓고 쉬어버리면 허물은 숨을 곳이 없다하지 않았느냐?” 한다.
연작이 이어서 묻되
“감히 묻고자 하옵는데, 어제 오늘에 보여준 바지들의 놀음놀이는 어떻게 기록해야 하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수많은 사람을 굶겨죽이고 때려죽이고 쏘아죽이면서도, 바지통은 세 사람 몫이 넘으니 통 큰 사람이 아니더냐!? 한눈에 보아도 약물에 의지(依支)해 연명(延命)해 가는 목숨이니, 그냥 두어도 기약한 날이 눈앞인데, 그저 보아 넘긴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서로가 선을 넘기 두려워 바들거리며, 쫄 대로 쫄은 겁 많은 두 바지가 손을 잡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가봐?’를 열창하고, 남북의 바지가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를 합창하니, 오히려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까봐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무리들이 있으니,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瑤池鏡)이 아니더냐!?
빌려 입은 옷도 물건이 마음에 들면 돌려주기가 아깝고, 남의 자리도 앉아보니 편하고, 비록 허세(虛勢)부리기라도 마음에 들면, 내려오기가 아까운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더냐? 이제는 물주노릇 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요, 물주와 바지가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가 되어버린 세상에 무엇이 이상할 것이 있느냐? 그러나 자업자득(自業自得)은 비록 그렇다 치더라도, 무도한 자들이 시대를 희롱(戱弄)한다고, 시절이 따라서 춤을 추고 장단을 맞추어서야 되겠느냐!?
누구 말대로, 두 바지가 바지사장 계약기간은 만료가 되어 가는데, 재계약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으니, 여러 가지 생명유지장치에 인공호흡기까지 달고 나와서, 성능을 시험하고자 보여준 쇼는 주구(走狗)들의 입담거리로는 괜찮을지 모르나, ‘이것들이 하는 짓을 한번 두고나 보자.’ 하는 트럼프아재로서는, 트럼프아재와 남쪽 형아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간보기 공연과, 생명유지장치 성능시험공연수준을 보고나니, 이것들이 사람의 눈높이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싶지 않겠느냐?
연작인 너도 은혜를 입에 담는데, 우러르고 둘러보니 참으로 은혜는 가없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막막황토(寞寞荒土)에 홀로서서 치신무지(置身無地)로다.”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무엇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노공(盧公)이 부엉이바위에서 한발을 내디딘 것은, 돌아다보니 참괴(慙愧)함이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나, 설산(雪山) 그 높은 곳에 다녀온 이가 부엉이바위로는 체면치레도 되지 않고, 백척간두(百尺竿頭)로도 안중에도 없는 일이고, 만장간두(萬丈竿頭)도 양에 차지 않아 억장(億丈)을 오르려다가, 너무 높아 일시에 무너져 내리니, 이를 일러 억장이 무너졌다는 말이니라.
진일보(進一步)는 일체를 남김없이 놓아버리고 나아가는 진일승(進一乘)을 말하나, 움켜 안고 나아감은 만장나락(萬丈奈落)으로 떨어짐을 이르는 말이니라.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 본래 죄(罪) 없음은 고금(古今)에 명백(明白)한 일, 바람소리 요란하나 빈 골짜기에 바람 지나가니 무엇이 걸림이 있더냐!? 스스로 짓고 받으니, 업장(業障)을 녹이지 못하면 모질게 받으나, 업장을 녹여 가벼이 하면, 빈 골짜기에 바람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느니라.
누가 누구에게 죄를 빌고, 누가 누구의 죄를 사(赦)한다 하더냐!? 홀연(忽然)히 무명(無明)이 일어났으니 ‘무명이 사라짐도, 홀연하기를 구하는 것’도 스스로가 세운 만필대대(萬必對對)에 속기 때문이 아니냐? 근원을 바로 끊지 못하니 강동(江東) 강서(江西)에 동남서북(東南西北)이 서고, 본래 안팎이 없는 곳에 내외(內外)가 부질없이 서성이느니라.” 한다.
연적이 또다시 조심스럽게 묻되
“통분(痛憤)과 울분(鬱憤)을 참는 기다림과, 인내의 한계가 가져올 가치가 과연 무엇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오래도록 묵묵하고 묵묵한 연후에 이르되
“전략적 인내의 한계를 운운하며 사람을 우롱(愚弄)한 지가 얼마이더냐? 그러고도 또다시 새로운 전술전략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순리(順理)를 위해 만보(萬步)를 물러서서 기다리던 용사(勇士)들의 대승적 인내(大乘的 忍耐)가 모든 것에 끝을 맺고, 하늘의 사(赦)함도 선조(先祖)의 사함도 구애(拘礙)받음 없이, 마지막을 의연(毅然)하고 비장(悲壯)하게 장식하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공적(功績)을 남기지 않으니 용사요, 휘장훈패(徽章勳牌)에 훈장(勳章)마저 없으니 만고(萬古)의 용사로다!!!” 한다.
비록 흰 구름 자재(自在)하다 하나
곳곳에 봄바람 이는 것만 하리요!
만리무운 만리천(萬里無雲 萬里天)이니
고학일성 천외장(孤鶴一聲 天外長)이로다!
문득 고개 드니
비로봉(毘盧峯) 천년 솔은
만공벽운(滿空碧雲)을 이고 서서 고금(古今)을 재촉하는데
둥근 머리 옛 할아버지
주장자(拄杖子) 들어 지공(指空)하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신다!
<작성 - 2018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