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량세태(炎凉世態) 시세시류(時勢時流)가 변화난측(變化難測)이라, 이것도 미쳐 돌아가고, 저것도 미쳐 돌아가고, 모두가 미쳐 돌아가니, 사람 몸 의지하고 국민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면, 무엇은 마땅히 지켜야 되고, 무엇은 마땅히 해야 되고, 무엇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되고, 무엇을 위해 이 한 몸, 이 한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야 하는지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건만, 어른아이 신분고하(身分高下)를 막론하고,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구분 못하고, 내키는 대로 내어지르고, 내키는 대로 퍼지르니, 모두가 한마음 바른 생각은 두었다가 어디에 쓰고, 분별사량(分別思量) 바른 도리는 두었다가 어디에 쓰려하십니까?
<언도설로(言道說路)>
세상을 화합하여 이끌어가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들은, 오히려 세상을 선동하고 편 가르는데 앞장을 서고, 염량세치(炎凉世恥)가 빤한 것들이 두꺼워진 얼굴을 무기삼아 본분을 망각하고, 시류(時流)에 배를 띄우고, 시세(時世)에 몸을 맡기고, 시세(時勢) 따라 논조(論調)를 싣고, 시세세고(市勢世故)에 편승하며, 언도설로를 어지럽힌 지가 이미 어제오늘이 아니다.
종편(綜䭏)인지, 종편(綜偏)인지, 종편(綜編)인지 헷갈리게 하는 언론들은, 처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철없는 아해들이 잠시잠깐 멋모르고, 의욕적으로 종편으로서 언론의 본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더니, 워낙 많이 배운 사람들인지라, 이내 뒷배 돈줄들과 높으신 어른들의 엄중하신 의도를 재빠르게 알아차리고는, 모두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아놓고, 하는 짓들이 양심은 전당포에 잡혀먹었는지, 어디에다 팔아 잡수셨는지, 언론이 가야 할 바른길과 언론인의 올바른 자세정도는 풍문으로라도 들었으련마는, 그 배움들을 활용하고 처신하는 데는 참으로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다. 그러니 언론의 공정성과 언도설로의 올바른 지표를 제시하고 이끌어가야 할 공중파 방송들은, 종편이 나서서 입으로는 거품을 물고, 손끝으로는 무식하고 탐욕스러운 필치(筆致)를 휘날리면서 저희들 가려운 곳을 낱낱이 긁어주니, 이제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하는 식으로 팔짱을 끼고, 간간히 불쏘시개 훈수나 몇 마디 날리면서 제 할 일을 회피한다.
이놈도 물어뜯고, 저놈도 물어뜯고, 이놈도 씹어대고, 저놈도 씹어대며, 골고루 물어뜯고 골고루 씹어대니 이것을 두고 언론의 공정성이라 하고, 자칭 자체조사 언론보도 공정성 1위라는 자랑들을 늘어놓으며, 종합적으로 물어뜯고, 종합적으로 씹어대니 종편이라 한다.
종편의 방송에서는 영혼없는 앵무새는 가만히 앉아서 물어다주는 데로 되뇌이며 쪼아대고, 간교한 여우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제 할말 다 하고, 제 할짓 다하면서 시청자들을 현혹하고, 음흉한 너구리는 지는 자못 점잖은 척 팔짱을 끼고 앉아, 간간히 콘트롤 멘트만 날리면서, 사안마다 제각각 잇속을 챙기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씹어대고 물어뜯을 패널들만을 대려다놓고서 제 목적을 달성하고, 사나운 승냥이는 패널들은 병풍 대용으로 앉혀놓고서, 지가 나서서 물어뜯고 씹으면서 뜯고 씹는 맛을 즐기고, 철근도 씹어 삼킨다는 하이애나는 잡식성 패널들을 모아놓고, 모두가 온종일 물어뜯고 씹어대면서 잔치를 연다.
어느 것이 앵무새고, 어느 것이 여우이고, 어느 것이 너구리고, 어느 것이 승냥이며 하이애나인지는 시청자들은 다 아는데도, 저희들만 모르니 같잖은 일이다. 그리고 저희들이 공정보도라면서 아무리 가리고 포장하여도, 보고 듣는 시청자와 읽는 독자들은 이미 약속된 치고받기와 그 숨은 의도마저 꿰뚫고 있는데도, 저희들만 모른다니 더욱더 가소로운 일이다. 만약에 이 사실을 그들이 알고도 모르는 척,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양심에 도색을 한 채, 이것마저도 다분히 의도적이라면, 이 나라 장래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어린백성을 긍휼(矜恤)히 여기시어>
지난 어느 날 “어린백성들이 무지하야, 먹고 죽은 놈은 때깔이라도 좋다는 말에 현혹되어, 지 죽을 줄 모르고, 분별없이 아무 약이나 많이만 먹으면 좋은 줄 알고 쳐먹어대니, 병 고쳐야 할 약이 오히려 약화(藥禍)가 되어 어린백성들의 몸을 도리어 괴롭히나니, 이제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노라!” 하시면서, 높으신 어른들이 은밀한 밀실에서 머리를 마주대고 몇 날을 보내시며 궁구하여 방책을 강구하시더니, 드디어 들고 나온 그 방책이 바로, 의약분업이라는 이름의 저의가 자못 아리송한 묘책중의 묘책이더라! 그리하여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여 어린백성들의 건강보호와 증진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의약분업이라는 드높은 기치를 세운지가 어느덧 20여년의 성상(星霜)이 흘렀으니, 처음 어른들의 의약분업이라는 방책이 나오자마자, 몇몇 물색없는 의사들과 약사들이 머리에 띠를 매고 나서서, 저 촉석루의 의기(義妓)와 같이 ‘강낭콩 같이 붉은’ 결기를 내보이며, 의사는 의사들대로, 약사는 약사들대로 저희들 권리를 침해한다면서, “니 죽고 내 살자.”의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이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하! 이것이 바로 윗분들의 지극하신 배려와 아낌없는 사랑이 담긴 은밀한 보살핌이구나!”를, 배운 사람들답게 얼른 알아차리고, 위층에는 의사남편이 아래층에는 약사마누라가, 위층에는 의사오빠누나가 아래층에는 약사동생들이, 위층에는 의사선생님들이 아래층에는 건물주의 약사따님이, 더러는 선배후배 친구식구 가리지 않고 위아래위층 통째로 네트워크 방식으로, 또는 흔히들 견원지간에 비유되던 올케와 시누이가, 한 칸은 의사올케가 또한 칸은 약사 시누이가 차지하고 보기드문 정다움을 연출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짝짜꿍이 되어, 갖은 수법으로 제약회사의 이익분배에 참여하고, 해마다 의료보험공단 예산증액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주머니를 불리시며 여유를 즐기시니, 그동안 물색모르고 착하기만 한 어린백성들은 이리저리 빨린 등골이 오그라져 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의약분업을 하지 않아도 백성은 오히려 현명하여 제 죽을 짓은 하지 않으니, 제발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은 어떠하실런지요? 약국에 가서 약 지어 먹고 싶으면 약 지어먹고,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싶으면 주사 맞을 수 있는 것도 어린백성들의 스스로의 판단이요, 스스로의 권리인데, 의사, 약사가 무슨 벼슬이길래, 이미 의사약사들 간의 오고가는 정다움으로 알려진 처방전 한 장이, 무슨 거룩한 분들의 은전(恩典)이나 되듯이, 줄 것 다주고도 감사하고 황송해야 되니, 무슨 연유로 세상이 다 너희들 입맛대로 살아야 하는 겁니까?
병원은 무슨 농산물검사소나 증명사진관이나 되듯이, 오는 족족 검사하고, 오는 족족 사진찍어야 된다하고, 아래층 약국에는 처방전 없이 세 번만 가서 일반 약을 달라하면, 바로위층이 병원인데 어째서 진료를 받지 않느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중히 나무라시니, 너희들 눈과 귀는 두었다가 어디에 써먹고,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생화학 그 많은 배움들은 두었다가 어디에 써먹으려 하십니까? 이제 환자는 어리고 가엾은 백성이 아니라, 한낱 병원과 약국의 상품이요, 의사 약사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지가 이미 오래인데, 아직까지 무슨 놈의 국민건강보호 타령이시고, 언제까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한 어린백성들을 위한 의사선생님들의 어질고 착한 자비심의 발로라고 우기실겁니까?
<연대공화국(連帶共和國)>
5천만이 다 국민이고, 곳곳마다 천만시민 수백만 수십만 시민이 다 시민이고, 그 많은 국민들과 시민들이 한 번도 연대해준 적도 없는데, 똥창 맞는 지들끼리 열 명이 모여서도 국민연대이고, 다섯 명이 모여서도 시민연대라며, 제 주장 앞세우고 제 잇속을 챙기려하니,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며, 무슨 연대 무슨 연대 이름만 들먹이면 국고가 지원된다하니, 정부는 무엇이 그리 켕기는 것이 많고, 공무원들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연대라는 이름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하는 겁니까?
연대라는 이름만 앞세우면, 온 국민 온 시민이 모두 연대하여 들고 일어나는 줄 알고, 나라가 놀라고, 가엾은 공복들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니, 연대 좋아하시는 분들 제발, 연대라는 이름을 앞세우실 때는, 연대자의 숫자와 연대자의 신원을 낱낱이 밝히시고, 연대하여 나서는 숨은 의도를 명확히 밝히시어, 나라가 놀라고 공복들이 경기를 일으켜 국정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고, “제들이 도대체 왜 저러나?” 하는 대다수의 반연대자들의 궁금증이라도 풀어주십시오.
예를 들어서, ‘눈먼 나랏돈 갈라먹기 위한 국민50인 참여연대’, ‘시커먼 잇속 챙기기 위한 시민30인 감시자연대’, ‘켕기는 것이 많은 놈들 등쳐먹기 위한 힘 좋은 시민20인 힘자랑연대’, ‘땅바닥에 드러누워서라도 챙길 것 다 챙기고, 얻어먹을 것 다 얻어먹기 위한 깡다구 있는 시민30인 연대’, ‘특정세력 특정정치인의 똘마니로 뒷배 좋은 국민30인 연대’ 등, 이렇게 한눈에 알아보기 좋은 이름들이 있는데도, 어째서 애매모호하게 이름들을 지어서, 챙긴 것은 니들끼리 다 갈라 잡수시면서도, 모든 국민들과 시민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십니까?
연대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 이 나라 대다수의 국민들과 시민들은, 국민과 시민의 이름으로 연대라는 명목을 앞세우는 거의 대부분의 모임과 단체들이, 정의를 실천하고 약자들을 편들기 위한 모임과 단체가 아닌 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무슨 노조 무슨 노조 하는 노조들이 노동자들의 권익만을 위하여 존재한다고는 이미 예전부터 믿지 않았고, 빼먹을 것 다 빼먹고 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하고 많은 대책위원회들도, 대책을 세우기 위한 대책위원회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들의 가슴에 후대를 위하고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과 일말의 인간적인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제발 좀 자제(自制)들 하시고, 눈을 들어 한번이라도 앞뒤좌우를 살펴보십시오! 여러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길들이 모두, 여러분 부모님들의 눈길이요, 여러분 형제남매들의 눈길이요, 여러분 아내와 자식들의 눈길입니다. 지금은 비록 모두가 ‘어리석은 것들’ 이라며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보지만, 그 측은지심이 분노로 변하고, 측은하게 바라보던 그 눈길에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어느 곳으로도 갈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역사의 뒤안길>
이 땅의 현대사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굴곡과, 무지(無知)와 무지(無智)가 불러일으킨 애증의 그림자가 깔려있는 줄은, 비록 역사를 제재로 배우지 못한 지금의 젊은이들도 모두가 짐작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목적이 애국위민이었음을 주장하든, 호국충정이었음을 주장하든, 잡다한 이념의 성취에 있었든, 모두가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서로가 편을 갈라서 무슨 혁명, 무슨 운동, 무슨 항쟁이라 하며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시비하지만, 이미 그려진 역사화(歷史畵)에는 그들이 그렇게 감추고자 하는 치부와, 치부를 감추고자 하는 노력까지도 낱낱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역사화에는 모든 것이 저절로 그려지고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야할 일을 마다하면서 땡땡이치고, 분탕질치는 모습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역사화입니다. 지금까지는 저희들의 알량한 지식과 밑천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똥철학을 바탕으로 내놓은 이념적 편향의 치부를 감추고, 저희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어두운 목적을 숨기기 위하여, 선동선전으로 진실을 호도하면서 민중들을 속이면서도, 민중혁명이니 민중항쟁이니 하면서 이 나라 이 땅의 민족정기를 흐리고, 이 땅의 미래들에게 민주주의의 참뜻과 민족정기의 신성함을 저희들이 왜곡한 모습으로만 받아들이게 하여, 이 땅의 수많은 미래들이 바르게 나아가야할 길을 망쳐놓았으니,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때가되면 모든 것이 자연히 제자리를 찾아들게 하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언젠가는 역사의 물줄기가 바로 돌아오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분명히 이념도 시시비비도 없이, 민중들의 가슴에 까닭없이 일어나는 주체할 수 없는 자발적인 분노가 대지를 불태우고, 이 땅의 정기를 바로세우는 날이 올 것이니, 이것이 곳 진정한 민중혁명이며, 그 진실한 민중혁명의 불길은 이 땅의 모든 불의를 불사르고, 이 땅위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필귀정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구현할 것입니다. 부디 이 땅의 민중들이 이 나라 정치권에 대한 지지와 사회의 지도층에 대한 신뢰를 조용히 철회하고, 구석구석 썩어빠진 국토를 대청소하려고 손에 손에 빗자루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고 바로 보십시오! 서른이 갓 넘은 이 젊은이의 눈에도 보이는데, 어째서 온 세상일을 손바닥 안에 두고 살아왔다고 자랑하는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역사는 교훈의 대상이지 시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역사화에 그려진 모든 것은 우리가 교훈으로 삼고 기려야할 선조들과 선대의 유산입니다. 역사화에 그려진 잘못된 부분들은 그 잘못 그려진 부분을 교훈으로 삼아, 후대들이 다시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게 해야하고, 잘 그려진 부분들은 본받고 기려서 이어 나아가며, 대대손손 올바르게 보전하여 전해야할 소중한 유산들입니다.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여 저희들의 검은 속내를 채우려는 무리들은 반드시 역사가 심판합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그린 역사화를 모두가 사심없이 한번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화려하고, 다양성이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입니까?
한국 역사화단(歷史畵壇)에서 반공유파의 거장이신 이승만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두 장 반의 역사화, 유파가 뚜렷하지는 않은 윤보선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반절지의 역사화, 비록 미완성이지만, 산업유파의 세계적 거장이신 박정희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넉 장에 해당하는 장대한 역사화, 박정희 화백의 문도였던 최규하 화백과 그 도반들이 그린 사분의 일절지의 역사화, 역시 박정희 화백의 문도였으나, 삼청유파라는 새로운 유파를 개척한 전두환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비규격 전지 한 장의 역사화, 전두환 화백과 맥을 같이 하였으나, 색체 사용과 음영처리 기법에서 유연성을 보인 노태우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한 장의 역사화, 직업정치유파의 대가 김영삼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한 장의 역사화, 직업정치유파에서 사회정치적 사조(思潮)를 보인 당대의 거장 김대중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한 장의 역사화, 이미 유행이 지난 낭만파사조에 심취한 노무현 화백과 약간은 사회유파적인 사조에 치우친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한 장의 비조합(非調合)의 역사화, 건설유파에서 노년에 치수유파적인 사조를 보인 현대화의 거장인 이명박 화백과 그 문도들이 그린 전지 한 장의 역사화, 그리고 지금은, 선친인 고 박정희 화백의 영애로, 못다 그린 선친의 대하역사화를 완성시키고, 아울러 이 나라 역사화단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중인, 자나 깨나 나라걱정유파의 거성으로 창조경제유파라는 독창성을 보이신 박근혜 화백과, 아직은 스승의 맥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한 그 문도들이 그려가고 있는 미완성의 역사화가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각각 독창성 있는 이 모든 역사화 역시도, 우리들이 보전하여 길이 후세에 가감없이 전하여 후세의 진실한 가슴들이 스스로 취향대로 감상하고 받아들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각자의 취향입니다. 역사화 역시 각자의 취향대로 감상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십시오. 각자가 취향대로 감상해야할 역사화를, 이제는 더 이상 시비의 대상으로 삼아, 이 나라 미래들의 눈을 멀게 하고, 나라의 장래를 그르치려하지 마십시오! 민주적 다양성위에 그려진 아름다운 역사화를, 모든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억지를 부리지 마십시오! 민중은 현명하여 아무리 감추고, 가리고, 호도하여도, 그 저의와 숨은 배경까지도 바라볼 줄 아는 진실한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화를 그려나갈 막중한 임무를 맡겼으면, 화필을 든 그 손에서 훌륭한 그림이 탄생하도록 끝까지 도와주십시오. 그림이 완상되기도 전에, 다음세대를 그려나갈 화공을 구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도화지 위에 한번 그려진 그림은 다시 그릴 수가 없습니다. 역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화에 덧칠을 하여 후대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감상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죄악이고 역사적 반역입니다. 역사화는 아무리 덧칠을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본래 그림이 저절로 드러나고, 덧칠하는 모습까지도 남게 되는 것이 역사화의 힘입니다.
근래에 그려진 어느 역사화 한편을 보십시오!
역사바로잡기라는 미명(美名)으로 전대(前代) 화백들을 귀양보내고, 영어(囹圄)의 몸을 만들어 인신을 구속하며, 화단을 늦게 장악한 화풀이를 하면서, 이미 그려진 그림에 덧칠을 하는 장면도 고스란히 역사화에 남았지 않습니까? 화풀이한 당사자는 일평생 국사화(國史畵) 한번 그리기를 소원하다가, 이제는 드디어 자기차례라 여겼는데, 화단에 이름조차 올리지도 않고, 난데없이 나타난 불한당 같은 비공식 화공들에게 차래를 새치기 당했다고 생각하였겠지만, 그것이 바로 천심이라 하는 민심의 흐름이고, 역사의 흐름이며, 예비명단에 올라있는 이름들마저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자신의 자만이요, 자신의 실수일 뿐입니다.
그러니 다음역사화를 내손으로 한번 그려볼까 은근히 기대하시는 분들!
이 나라 국민들은 예비명단에도 없는 깜짝 신인이 나타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살짝 맛이 가는 경향이 있으니, 사방 구석구석 잘 살펴보십시오. 지난 ‘새정치 해프닝’도 깜짝 신인이면 맛이 가는 국민들의 턱없는 기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방심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논가의 찔레꽃’이 되는 것입니다. 모심기가 한창인 논가에 생면부지의 나그네가 와서, 더운데 고생들이 많다면서 한참이나 서서 위로를 하고 간 후에 보니, 모내기를 마치고 목마를 때 꺾어 먹으려고 했던 찔레순을 나그네가 죄다 꺾어 가벼렸더랍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눈에 불을 켜고 살피십시오. 설혹 그동안의 노력이 ‘논가의 찔레꽃’처럼 되더라도, 그것이 민심이고 천심이며,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인 줄 아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 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깜짝 신인이 나타나기를 갈망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어떤 화공의 손을 빌어 어떻게 그려진 역사화이든, 그것은 그 당시마다 당대선인들의 민심이 반영된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사실이며, 후대들이 감히 입에 담을 시비 거리가 아닙니다. 역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후대들도 함께 대대손손 누려야할 소중하고도 성스러운 자산입니다. 이제는 제발, 수많은 고초를 감내하며 선대들의 가슴으로 일구어 전해준 신성한 역사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잇속을 챙기려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이 내리는 준엄한 명령임을 명심하십시오!
특히, 여의도 높은 곳에 앉아서 나라의 장래는 안중에도 없이, 일구월심(日久月深) 어찌하면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여 시비 거리로 만들어, 잇속을 좀 챙겨볼까 앙앙불락(怏怏不樂)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는 분들!
가만히 창문을 열고 한강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유구한 세월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앞물결은 묵묵히 세월을 싣고 제 갈길을 가니, 시시때때 물결마다 머물음이 없고, 주인이라 칭한 바 없었으니, 늘 강물은 그렇게 푸르렀습니다.
공연히 눈감은 봉사처럼, '춘래 불사춘' 이라는 자신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말들이나 내뱉으며, 웃음거리나 만들지 말고, 눈을 뜨고 한번 가슴을 열어 보십시오.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여의도의 봄은, 이미 1948년 국회가 개원될 때 이미 왔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그 봄을 제대로 맞이하는 사람들이 없었을 뿐입니다. 봄은 봄맞이 준비가 제대로 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모두가 탐욕에 눈이 멀고, 어리석음으로 가슴을 채워, 오는 봄을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서는, 눈을 감고 가슴을 닫고 앉아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춘래 불사춘'이나 외어대며 말장난이나 하니, 여러분들이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여러분들을 걱정합니다. 이미 온 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손들을 위한 희망의 씨를 뿌리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봄은 여러분들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 무슨 염치로 또다시 봄타령을 하려하십니까? 욕심 많으신 분들께 부탁합니다. 그 욕심을 조금이라도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데 할애해 보십시오. 그러면 머지않아 여러분들의 휘자(諱字)앞에 애국선열이라는 이름이 헌정될 것입니다. 온갖 욕심을 다 부리면서도 어찌하여, 국민들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여 한 목숨 바쳐보겠다는 욕심은 부릴 줄을 모르고, 애국선열이 한번 되어 보겠다는 욕심은 부릴 줄을 모릅니까? 그리고 비록 존경은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하는 분들을 존중하십시오!
이 젊은이가 염원합니다. 부디 오래도록 모두 무사진중(無事珍重) 하십시오!
(아직 할 말은 많으나, 6월 21일부터 시작되는 동원예비군 훈련을 다녀와서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