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284-285 가운데 일부 발췌 -
비록 한 마음 생각이 산하대지를 지나고 석벽(石壁)을 꿰뚫는다 하나, 천안통(天眼通)이라 하여 “방안에 앉아서 만리경계(萬里境界)를 한눈에 보기도 한다.” 하고, 그 나머지 일에도 듣는 바 천이통(天耳通)을 비롯하여, 신족통(神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이라 이름 하는 모든 신통력(神通力, The miraculous supernatural power)이 이와 같다하더라도, 이는 오랜 세월 의식적 변통을 의지하거나, 혹은 해탈을 의지한 신통으로 모두가 의지함으로 얻은 신통일 뿐이며, 다가오는 경계마다 여섯 가지 눈을 갖추어, 대선정처(大禪定處) 가운데 눈앞을 의지함이 없이 바로비추는 일과는 지극히 다른 일이다. 그러므로 눈앞을 떠나서 구하려 하지 않고, 육목(六目)이 함께 밝아 항상 눈앞에 진실하면 만법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티끌 없는 무구정광(無垢淨光) 본래심(本來心) 그대로 당금목전(當今目前) 진진찰찰(塵塵刹刹)에 진실하고 진실하여 여여(如如)하고 여의(如意)함이 참신통일 뿐, 나머지는 모두가 의지한 변통일 뿐이다. 그러니 새들과 원숭이들이 물어다주는 과일공양보다는, 스스로 나물 뜯고 풀뿌리 캐어 배고픈 부끄러움을 면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며, 그리고 방안에 앉아서 ‘사방 벽(壁)이 다 문(門)인 것’ 보다는 ‘문은 문이고, 벽은 벽인 것’이 매우 합당하다 하지 않겠는가?(*의지함이라 함은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다르므로, 의지함의 입장들과 의지함을 떠남을 잘 알아야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의 병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의지하여 수행하는 이들은 의지하여 애쓴 공력에 의하여 생체에너지 수준이 높아지거나 달라지면 의식적 발현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달라진 의식적 발현기능에 의한 경계의 의식적 수용인 이것을 올바른 수행의 공과功果라 착각한다. 이것은 다만 의지한 가운데의 일일뿐 의지함을 여읜 올바른 수행의 공능功能인 자성본능의 자연발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