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331-332 가운데 일부 발췌 -
명상수행에 의하여 아무리 의식체계가 맑아졌다 하여도,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간단(間斷)이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 유념(有念, Thought or defiled mind)이라 하며, 즉초원념(卽初元念)에 일념상응하여 간단이 없는 무간도(無間道: 등각等覺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의 참선수행 과정을 거쳐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상응하는 일념마저(있다는 한 생각) 여의고, 본래부동의 진여본원에 상응하는 대무심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궁극의 무념(無念, The thinking without thinking and attachment, mindfulness without attachment)이라 하는 것이다.(*정성을 다해 준비해온 자량資糧을 밑천삼아, 소금자루를 쓰고서 보낸 열한熱汗의 가행도加行道를 지나서 망향정望鄕亭에 오르고, 다시 행로行路를 잡아 불가마속에 앉아 찬 서리를 맞으면서 보낸 무간도無間道를 지나고서 망월루望月樓에 오르니, 누樓 앞에 길게 뻗은 한 길이 한번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해탈도解脫道라 이름 한다! 어렵게 발 들여놓은 해탈도의 아쉬운 여정旅程 정한情恨도 많았으나, 영별연永別宴의 별루別淚와 송영대送迎臺의 마지막 정회情懷를 뒤로하니 눈앞이 옛 간월대看月臺로다. 마침내 간월대에서 길게 포효咆哮하고, 크게 용트림하여 만장간두萬丈竿頭에 뛰어올라, 거침없이 공명空明중에 발을 내디뎌 신명身命을 놓아버리니, 이미 한줄기 외로운 빛은 승진도勝進道를 지나 관풍루觀風樓에 뻗히고, 고학일성孤鶴一聲은 아득히 하늘밖에 사무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과 보살승菩薩乘의 지위에서는 근기가 둔하고 총명함이 다르기 때문에, 지위에 따라서 각각의 단계를 별도로 거치기도 하지만, 하나의 바탕으로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벽지불僻支佛이 일체진로一切塵勞를 끊고 해탈승解脫乘에 올라 속히 열반涅槃으로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십지보살이 당금당처當今當處 눈앞의 현전現前에서 즉각명료卽覺明了하여 바로 비추는 현관現觀을 얻고서도, 인因으로 선천발로先天發露하는 미세소지장微細所知障만 단멸하고, 연緣하여 자연발로自然發露하는 미세번뇌장微細煩惱障은 그대로 두는 것은 서원誓願을 도와 태어나기를 위한 자비행慈悲行의 발로이며, 한 가닥 미진未盡한 남은자취 미세유주微細流注의 번뇌장은 성불할 때에 단멸하고 불지에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일념에 상응함이 항상(恒常)하여 간단이 없는 무간(無間: 무간의 경지에서는 염염念念의 사이가 없고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공무空無한 무간정無間定 이므로, 생각이 일어나고 끼어들 틈이 없어, 일체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붙을 수가 없어 수행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적적하나 깨어 있어 성성적적惺惺寂寂함과 적적함에 침잠沈潛한 침공체적沈空滯寂이 있다.)의 경지에 이르러, 무간 이어서 간단이 없음으로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고, 시간의 흐름이 멈추었음으로 시간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공간마저 하나가 되어, 일체를 섭수하고 이해하여 짓는 바가 궁극의 자리인 구경지(究竟地)와 비슷할지라도(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궁극의 자리에서의 육신통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상응하는 바가 초념(初念)에 의지하고 있음으로 유념이기 때문에, 생각의 흐름이 멈추어 생사의 물결이 멈추고 시공간이 하나가된 것 일뿐, 생사의 물결을 벗어나고 시공간의 있음을 완전히 여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유전(流轉)하는 생사전변(生死轉變)에서 임운자재(任運自在)하다 할지라도,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 생사 없는 자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며, 상응하는 일념마저 여읜 진여무심(眞如無心)의 자리와는 그 근본이 다르다.(*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요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 제법의 본성은 원융하여 대대對對의 차별상이 없고, 제법의 본성은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지만, 찰찰현전刹刹現前에 업식業識의 인연경계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눈앞의 진진찰찰塵塵刹刹 인연법상因緣法相에서 범부는 망정견해妄情見解로 분별법상分別法相을 보아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짓고, 선지식은 지혜안으로 오온五蘊이 개공皆空하여 자성自性 없고 자상自相 없어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인 법상의 본연법성本然法性을 조견照見하여 각혜상조覺慧常照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