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162-163 가운데 일부 발췌 -
실존(實存)은 항상 허무(虛無)를 마주하고, 실재(實在)의 저 너머에는 늘 공무(空無)가 자리한다.
현상계는 의식체계를 의지한 가설된 경계이다. 그러므로 의식체계를 의지한 생사의 전변(轉變)에서 의식적 유전으로 윤회하는 모든 생명들은, 생사의 기멸에서 한 목숨과 더불어 두고 가기가 아까워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경계마저 거두어 가는 줄을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현상과 비현상은 차원 내에서의 존재적 대칭이고, 있음과 없음(有無), 있음이 없음과 없음이 없음(非有非無), 있음이 없음이 없음과 있음이 없음이 없음(非非有 非非無)은 차원 내에서의 현상적 차별성이다. 즉 유무의 대칭은 개념적 대칭일 뿐만이 아니라 현상적이고 존재론적인 대칭이다.
현전하는 현상에서 있음의 유는 현상하는 양의 영역이고, 없음의 무는 비현상의 음의 영역이다.
현상과 비현상을 여의고 있음과 없음을 여읜 자리가 공(空)의 자리이고, 일체를 여의었으되 여읜 바가 없음으로 본유본무(本有本無)인 진공이고, 진공이므로 그 자리가 바로 만유(萬有)가 스스로 본무(本無)이며 본유(本有)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이다.
현상하는 양의 영역 물질체계에 의지한 우리의 감각기관과 의식체계는 비현상의 음의 영역을 인식할 수 없으며, 다만 게이지대칭과 같은 대칭성에 의하여 우리의 무의식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유무를 여읜 중관론적인 공의 입장에서의 진공묘유는 아니지만, 현대물리학은 이제 겨우 현상하는 실존적 입장에서의 물리적 진공과, 그 진공 가운데 은밀하게 존재하면서 현상계의 만유(萬有)를 창출(創出)하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는 영점에너지(zero-point energy)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만유는 그대로인데 보고 인식하여 아는 능력이 다를 뿐이며, 옛사람이 전한 글에서 “불조(佛祖)가 전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伽葉)이 감추지 않았으니, 이것이 비밀이 되는 까닭이다.” 한 이유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이해에서 의식적 유전현상으로 의식체계의 맨 아랫자리에 깊이 잠재되어진 '있다는 한 생각'을 여의고 의식의 구름만 걷어낼 수 있다면, 궁극의 진공묘유를 맛보는 희열을 느끼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