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兆朕)>
연작이 묻되
“지금 태극기 노래방과 저자에서는 여러 가지 노래가 개사(改詞)되어 불리는데, 그 가운데 금사향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개사하여 널리 불리는 노래가 있으니,
‘태극기 흔들며 님을 보낸 새벽 삼성동
하늘도 울었소!
만세소리 하늘높이 울려 퍼진 날
지금은 어느 감옥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감옥 어느 곳에서
의연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
두 손을 흔들며 님의 축복 빌던 그 아침
산천도 울었소!
파도치는 깃발 아래 헤어지던 날
지금은 어느 감옥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감옥 어느 곳에서
외로이도 싸우시나
님이여 평안하소서’라는 노래이온데, 이러한 노래가 유행하여 불리는 까닭이 무엇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노래는 시대의 민심(民心)이고, 민심이 곧 천심(天心)이니, 큰일에는 늘 조짐이 먼저 일어나는 법, 예로부터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노래로 민심이 동요(動搖)하였느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하나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집집마다 모임마다 모두가 착하기 그지없는데, 바깥의 세상은 온통 개판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집집마다 저희들끼리 착하고, 모임마다 저희들끼리 착하고, 모두가 끼리끼리 착하나, 세상이 금수(禽獸)의 세상인 것은, 숲속만 보고 숲을 벗어나 산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지난날에는 세상이 먼저 착한 바탕에서 각자와 무리들의 착함을 추구(追求)하였으나, 지금은 세상의 착함은 돌보지 않고, 저희들만의 울타리에서 저희들만의 착함을 구하기 때문이니라!”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무엇이 학문과 정치와 예술을 아우르는 대가(大家)입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만지고 더듬고 주무르고 덮친다고 문학의 대가이고, 예술의 대가이고, 정치권력의 대가이면, 내가 겪어본 어느 서예가(書藝家)라는 자도, 그 방면에 달통(達通)하여 타(他)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어느 반열(班列)에 올려야 하겠느냐!?” 한다.
연작이 옛일을 추상(追想)하며 눈앞의 의심하는 바를 묻되
“세상사에는 이런 일 저런 일들이 허다(許多)한데, 일을 도모(圖謀)한 연후(然後)에는 그 많은 눈과 입들은 어디에 두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토사구팽(兎死狗烹)은 없지 않으나, 이는 당하는 입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요, 내막을 깊이 아는 눈과 입은 부토(腐土)가 되는 것이 통례(通例)이고, 눈으로 들어서 보지 못하고, 들어서 짐작하는 여우의 입은 꿀단지를 안겨서 틀어막고,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행하여도, 내막을 알 턱이 없는 심부름꾼의 입들은 유공자(有功者)로 삼아 대접하여 잠재우느니라! 그런 연고(緣故)로, 병기고(兵器庫)에 얼쩡거리던 입들은 유공자의 반열(班列)에 오르고, 내막을 짐작한 여우가 사자의 탈을 쓰고 거들먹거리기도 하며, 일에 깊숙이 관여(關與)하여 앞장서서 도모하던 입들은, 더러는 이런 일을 당하고 저런 일을 당하여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자살을 당하기도 하여 부토가 된지가 오래 이니라!” 한다.
이에 연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되
“지난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눈앞의 일은 입들이 너무 많으니, 결말이 어찌 되겠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지난날 난동(亂動)과 폭동(暴動)은 사람의 일이라, 감추고 꾸미고 덧칠하는 것까지도 낱낱이 역사가 심판할 일이나, 오늘 눈앞의 일은 천의준명(天意峻命)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이니, 이는 곧 하늘이 심판하는 일이니라! 하늘의 심판은 내림은 동일하나 그 받음의 경중(輕重)이 가히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니, 장차 이 일을 어찌 감당(堪當)하겠는가!? 애달프고 애달프도다!” 한다.
연작이 묻되
“무엇이 대대(對對)이고, 대대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결말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눈앞에 보임과 보이지 않음이 현상과 비현상의 대대이고, 보이는 것을 양(陽)이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음(陰)이라 하여, 모든 대대를 음양으로 비유한다. 음양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곧, 현상과 비현상이 무너지는 것이니, 이는 현상을 의지한 세상이 무너진다는 조짐(兆朕)이니라!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로 보면, 지금의 눈앞의 까닭은 삼국(三國)을 통일한 통일신라(統一新羅)가 무너지고,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한 고려(高麗)가 무너지고, 조선(朝鮮)이 무너질 때와 다름이 없고, 현상은 그토록 강성대국을 자랑하던 고구려(高句麗)가 무너질 때와 진배가 없느니라!” 한다.
자!
문득 바라보니, 서산낙조(西山落照) 월출동산(月出東山)이로다! 무엇이 허물인가!? 궁구하라!!
<작성 - 2018년 2월 19일(음력 무술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