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맹견문(聾盲見聞)>
연작이 묻되
“모습은 사람인데 어찌하여 토(吐)하는 것은 폐성(吠聲)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목숨이 경각(頃刻)이요, 후안무치(厚顔無恥)로도 감당할 길이 없으니, 패륜(悖倫)을 어찌 알고, 역천(逆天)을 어이 알겠느냐!? ‘유신(維新)의 심장을 쏘았다.’는 요변(妖辯)도 희대(稀代)의 폐성이요, 역자(逆者)가 감희 국본(國本)의 근간(根幹)인 헌법을 들먹이며, 딱히 헌법을 위반한 죄는 없으되, 다만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어 보여, 저를 임명한 주군(主君)을 파면(罷免)한다는 괴변(怪辯)도, 고금(古今)에 길이 회자(膾炙)될 폐성 중에 폐성이니라! 이 나라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비행기추락사고(飛行機墜落事故)가 나고, 여객선침몰사고(旅客船沈沒事故)가 나고, 열차(列車)와 자동차전복사고(自動車顚覆事故)와 추돌사고(追突事故)가 나서, 일국의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는 소리는 동서고금(東西古今)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아니더냐!?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하며 자식을 훈육(訓育)하고, 후대를 교육한답시고 고개를 쳐들고 다니며 요변(妖辨)을 늘어놓으니, 고금의 참경(慘景)이요, 희대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아니더냐!?”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오히려 참을 논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명상(瞑想)과 참선(參禪)을 입에 담는 까닭은 무엇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서당구자(書堂狗子) 3년이면 송풍월(誦風月)이라 하더니, 연작인 네가 그러하구나! 밖을 잘 내다보기 위하여 유리창을 닦는 아둔함과, 아예 유리창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는 현명함이 그와 같느니라! 의식체계를 의지하여 의식을 정화(淨化)하고 맑혀서 온전히 보려는 것을 명상이라 하고, 의식체계를 의지함을 여의고서 걸림 없이 비추고자 하는 것을 참선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아무리 정화하고 맑혀도 의식체계를 의지하면, 생사를 윤회하며 다만 꿈을 아름답게 꾸려는 것이요, 의식체계를 여의면 생사를 벗어나 꿈을 깨는 것이니, 이를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참선과 명상을 혼동하여 허송세월(虛送歲月) 하느니라. 까닭 없이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어나듯, 홀기무명(忽起無明)하여 부처와 중생이 나누어지고, 의식체계(意識體系)가 일어나 일체양변대대(一切兩邊對對)가 벌어져 시시비비(是是非非)가 끝없이 일어남은, 고금에 널리 회자(膾炙)되는 원죄(原罪)요, 근본(根本)허물이 아니더냐!? 꿈을 깨지 못하면 끝없는 생사의 물결이나, 꿈을 깨고 나면 꿈속의 생사의 강물은 온데 간데 없으니 본무생사(本無生死)이니라! 내려놓고 쉬어가라 누누(累累)이 당부하건만,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고, 무엇을 어떻게 쉬어가야 하는 줄을 모르니, 부질없이 참과 거짓을 입에 담고, 명상과 참선을 혼동하여 옛사람의 뜻을 그릇되게 하느니라. 눈앞의 일체아상(一切我相)을 내려놓고, 끝없는 염념(念念) 일체업식(一切業識)을 쉬어버리니, 무엇이 남았는가!? 자! 강을 들어버리니 어디에서 강남강북을 찾겠는가!? 바람 불어 꽃피고 새우는 시절이니, 가만히 창을 열고 밖을 내다 보거라!” 한다.
연작이 평소와 다른 홍곡의 대답에 숙연(肅然)하여 옛일을 들어 묻되
“무엇이 지사(志士)의 길입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나라가 망한 연유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모르고, 나라의 독립을 입에 담고 살던 노인이, 가는 길이 다르다하여 일평생 자식과 조면(阻面)하였으나, 그 불민(不敏)한 자식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남모르게 여생(餘生)을 바쳤음을 그 누가 아는가!? 비록 동작동 장군묘역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쓸쓸히 누웠으나, 아무도 찾는 이 없음은 세상인심이 그러하고, 덧칠한 역사를 그대로 보는 후세의 아둔함이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방성통곡(放聲慟哭)하는 범부(凡夫)의 피눈물은 세월을 아프게 수(繡)놓는다 하지만, 하늘도 알지 못하는 장부(丈夫)의 소리 없는 피눈물은, 은밀한 장한사(長恨思)를 광음(光陰)에 부촉(咐囑)하느니라. 오늘 저 옥중화(獄中花)의 피눈물을 그 누가 알며, 말없는 은밀한 부촉사(咐囑辭)를 그 누가 알아서 받드는가!? 눈앞이 억겁(億劫)이고 억겁이 눈앞일진대, 장부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을 무엇을 위해 아끼겠는가!?” 한다.
자!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니 무엇인가!?
뇌성벽력(雷聲霹靂)도 소용없으니
무엇으로 듣고 무엇으로 보는가!?
문득 깊은 물속에 앉은 농맹(聾盲)이 무릎을 치니
성외일음 묘진색(聲外一音 妙眞色)이로다!!
<작성 - 2018년 4월 2일(음력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