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9일 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16관


<비사(秘史)>

연작이 가만히 옛일을 들어 묻되
“무엇이 비사(秘史)입니까?” 하니
홍곡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연후에 이르되
“지난날 그 누가 말하기를 ‘나도 별을 달고 그곳에 근무하였으나, 그곳에 그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 않았느냐? 그만큼 기밀(機密)이 유지되던 그곳에, 아무리 측근 중에 측근이 주최하는 연회일지언정, 근위(近衛)의 규칙이 어떠한 것인데, 주군(主君)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근위장(近衛長)이 아무 준비도 없이, 서로 으르렁거리던 측근을 믿고서 주군을 모시고 편하게 술을 마시고, 그 휘하(麾下)들도 아무 믿는 바도 없이 속편하게 병장기(兵仗器)를 내려놓고 밥을 먹고 있었겠느냐!? 역도(逆盜)가 고장 난 병장기를 버리고 다시 병장기를 가지러 간 사이에, 근위장이 화장실에 간 것은 몸을 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만약을 대비해 당연히 그곳에 은밀히 비치되어 있어야 할 병장기를 가지러 간 것이었고, 병장기에 맞은 한손을 감싸 쥐고 벽을 친 것은, 주기(酒氣)가 오르면 수시로 변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해, 벽 뒤 방마다 대기하고 있었던 여러 무리들의 여성들 중에는, 신분을 가장한 특수한 여인들이 의상가방에 병장기를 숨긴채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당연히 비치되어 있어야 할 화장실 안의 병장기도 간 곳이 없고, 벽 뒤에 있다가 튀어나와야 할 특수한 여인들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적(蹤迹)이 없으니, 그 얼마나 치밀한 사전준비가 있었겠느냐!? 술자리에서 벌어진 측근들의 우연한 언쟁(言爭)으로 일어난 싸움으로, 주군이 시해(弑害)되었다는 그 말을 믿는 순진덩어리들이 이 나라 민초들이 아니더냐? 그것을 아는 것은 근위책임자인 근위장과 (?)와 (??) 셋밖에 없었으니, 그날 밤 근위장은 흉도의 병장기에 맞아 가고, (??)는 분에 못 이겨 자결(自決)하고, (?)는 불과 얼마 후 영문 모르게 세상을 떠났느니라. 그러나 그 이면(裏面)에는 또한 빌미를 주고, 그 빌미를 정당화하려는 악도들과 오랑캐들의 기막힌 술수(術數)와 술책(術策)이 숨어있었으니, 이는 차마 너에게 알리지 못하느니라. 이에 대한 영문과 까닭은 훗날 세상이 낱낱이 알도록 방편을 지어 두었으나, 눈 밝고, 양심 있고, 용기 있는 사가(史家)가 그리 흔하지는 않으니, 이것이 비사가 되던지, 비사가 되어 왔던 비사가 밝혀지든지 그것은 후세(後世)의 복덕(福德)이요 후세 사가의 책무(責務)이니, 지금 너와 내가 논할 일이 아니니라.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으니, 자고로 모든 비사가 비사였음이 밝혀졌기에 비사라는 말이 세상에 나왔느니라.” 한다.
그러자 연작이 의아한 듯 다시 묻되
“그러면 그 셋밖에 모르는 비사를 선생님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하니
홍곡이 참으로 오랫동안 묵묵한 연후에 이르되
“세상이 너를 일러 연작이라 하고, 나를 일러 홍곡이라 하며, 홍곡지지(鴻鵠之志)란 말이 세상에 나왔지 않느냐? 그 셋 가운데서 (?)와 (??)이 나와 더불어 인연을 맺은 것은, 차마 너에게 말할 수가 없는 여차여차한 사정이 있으니, 이를 일러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불천지맹(不遷之盟)의 수필지밀(須必持密)이라 하느니라. 시절이 이러하고, 지금 내가 육신(肉身)이 피를 토하며, 지난날 과보를 받아야 하는 병고(病苦)를 겪고 있어, 내가 오늘날 너와 더불어 반농반진(半弄半眞)으로 세월을 축내고 있으나, 그 시간이 과연 얼마이겠느냐? 누겁(累劫)의 인연을 빌어 사람 몸으로 이 땅에 온 인연이 어찌 작다 하겠느냐?! 화두공안이 33관이 되면 나도 문을 닫고, 몸 나툰 이 땅의 인연들을 위한 마지막 보은(報恩)을 위해, 여생(餘生)을 바쳐 진력(盡力)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너와의 남은 인연이 그리 길지는 않느니라!” 한다.
그러자 연작이 다시 묻되
“험난한 세월에 어찌 비사가 그것뿐이겠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세상이 다 알고나면 어찌 비사라 하겠느냐? 병기고(兵器庫)에서 탈취(奪取)당한 바도 없는 신무기(新武器)를 둘러맨 천군(天軍)들이, 학당(學堂)에 군막(軍幕)을 치고서 밤일을 도모(圖謀)하고, 곳곳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기도 하였으나, 그 당시 전국을 거미줄같이 연결하여, 시ㆍ군ㆍ구ㆍ읍ㆍ면ㆍ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던 정보부의 정보망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일언반구(一言半句)의 거론조차 없고,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병기고를 탈취한 자들은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통례였음이었는데도, 내막을 깊이 아는 입막음을 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병기고탈취에 가담했던 자들이 사형은 고사하고, 그 후에 시행한 삼청교육에 조차 거의 끌려가지 않는 것을 보면, 정권창출과 훗날의 안배와 떡고물 나누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서로의 이익을 위한 양보와 묵계(黙契)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 그리고 지난날 유교의 가르침이 근본이던 조선조에서, 아무리 임금은 무치(無恥)라 하였으나, 연산군(燕山君)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행적(行蹟)과 광해군(光海君)의 비윤리적인 행적을 어찌 기록 그대로 믿겠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그 시절을 풍미(風靡)했던 태민이를, 경찰나부랭이와 사이비종교인 운운하면서, 여러 일들을 얽어매는 것도 참으로 가소로운 폐성(吠聲)이요, 그와 더불어 해괴한 논리와 억지로 찬역(簒逆)을 정당화하려는 것도 폐성이 아니더냐!? 평안도에는 묘향산(妙香山)이 있고, 황해도에는 구월산(九月山)이 있고, 함경도에는 칠보산(七寶山)이 있으니, 그 이름아래 뭉쳐진 고토수복(故土收復) 구국결사(救國結社)의 한자리에는 엄연히 태민이라는 이름도 있었느니라.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장성출신으로 칠보산결사의 백좌(伯座)로 대접받던 어느 분과, 그분이 돌아가시기 2년 전쯤인 2000년 어느 봄날에 대구의 팔공산에서 우연히 만나뵈옵고, 어느 찻집에서 차를 대접하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저자들이 지금 우리를 도청을 하고 있구나.’하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들어 내놓고 보이는 거리에서 쳐다보고 웃어가며 도청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느니라. 그리고 나머지 수많은 일들은 지금은 비사로 남겨둠이, 비사가 전해지는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한다.

겨울은 숨어서 기회를 엿보는데
봄은 미안한 듯이 오지도 않고 돌아서 지나가고
여름은 부끄러워 발을 디밀지 못하니
오히려 가을이 기회를 엿본다.
시절이 시절다운 시절이 아닌데도
조짐(兆朕)을 모르고 기미(幾微)조차 모르니
선대(先代)는 후대(後代)에게 너그러울지라도
조상(祖上)은 자손(子孫)에게 너그러울 수가 없으니
이것이 이치(理致)이고 법도(法道)인 줄을 그 누가 아는가!?
망운지정(望雲之情) 망운지회(望雲之懷)에
산하(山河)는 통곡(慟哭)하는데
기름진 배 두드리고 희희낙락(喜喜樂樂)이니
어찌 칠통(漆桶) 속에서 명암(明暗)을 논하느냐!?
어리석고 어리석으니
어느 젊은이가 글 자리 하나를 빌어서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저희들이 노래하는
노벨상이라는 것을 능가하고도 남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말을 내뱉으며
세상의 학문하는 자들과 치도(治道)를 논하는 자들을 시험하건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더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위하겠는가!?
그 작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든 것인 줄 알았던가!?
아무리 눈이 어두워져도 세상인심이 이리 돌아가며
어찌하여 세상의 대접이 이리 각박(刻薄)하더냐!?
성상(星霜)은 돌고 돌며 광음(光陰)이 춤을 추니
꽃 피고 새 우니 화란춘성(花爛春盛)이라 하나
장강의 물밑에는 세월(歲月)이 지나감을 그 누가 아는가!?
흘러간 세월 속에 무엇이 묻혀서 갔음을 그 누가 알았던가!
분지분복(分之分福)이요 팔자소관(八字所關)이라더니
이것이 시절복운(時節福運)이로다.
나라의 녹(祿)을 먹는 자들이
저희들이 지금부터 연구하고자 하는 짓이 하찮고 부질없음을 말하니
오히려 그 잘못을 묻으려한다.
어찌 하늘땅에 보고 듣는 눈과 귀가 한둘이더냐!?
후세를 생각하여 소리 없이 통천대곡(慟天大哭)하니
이를 일러
고학일성(孤鶴一聲) 천외장(天外長)이라 하노라.

자!
화란춘색(花爛春色)은 어느 마음이요
통한지세(痛恨之歲)는 어느 마음인가!?
서천(西天)의 옛 마음이 동천(東天)의 지금 마음이니
공맹지의(孔孟志意)가 그러하고,
악비지용(岳飛智勇)이 그러할 뿐이로다!
옛 시인이 노래하기를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고
별루연년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라 하였더니
아리수(阿利水)는 성상(星霜) 광음(光陰)의 자취요 세월의 흐름이며
낙수(洛水)는 통한별루(痛恨別淚)의 흐름인 줄 오늘에야 알았구나.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진실로 조사서래의로다!!!

<작성 - 2018년 4월 9일(음력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