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발원(長江發源)>
연작이 묻되
“모든 물음에는 하이고(何以故) 여하시(如何是)가 앞서는데,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나이까?” 하니
홍곡이 탄성과 함께 이르되
“네가 이제 나의 자리를 넘보니 내가 갈 곳이 어디이겠느냐? 예로부터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민다는 말은, 세세염념(細細念念)이 흐르는 생사의 물결뿐만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천변만화(千變萬化) 인연질서(因緣秩序)를 말하느니라. 너도 이제 장강의 발원을 의심하는 것을 보니 서당구자(書堂狗子)는 면했구나!”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하이고, 여하시는 앞세우지 않더라도, 지금은 후세에 표훈(表訓)을 삼기위해 나무를 심을 시절도 아닌데, 과연 눈앞에 이 일들은 무어라 일러서 남겨야 하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정공(鄭公)이 머리도 들어가지 않는 창구멍으로 뛰어내리고, 경호원은 시야에서 경호대상자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수칙을 어기고 자리를 비켜준 사이에, 노공(盧公)이 굴러도 시원찮을 부엉이바위에서 펌뛰기를 하고, 벌건 대낮에 서울시가 다쳐다보는 나무에, 성공(成公)이 바지주머니에 뇌물을 주었다는 여섯 사람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고서 높은 나무에 목을 매고, 롯데의 공신(功臣)인 이공(李公)이 닭 한 마리만 앉아도 부러질 나뭇가지에 넥타이로 목을 매고, 차마 거론하지 못할 여러 가지 신기(神奇)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재주가 신기(神技)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씀씀이가 너무나 신기(新奇)하고, 그 가당치도 않은 신기(神技)를 그대로 믿는 이 나라 백성들의 무지(無知)가 너무나 신기(神奇)하기 때문이니라.
이 나라에는 전직 대통령의 거처와 그 거처 수 십리 주위를 비추는 CCTV가 존재하고, 그 외에도 이 나라 방방곡곡(坊坊曲曲) 심심산촌(深深山村)에까지도 방범용CCTV가 천라지망(天羅地網) 같은 곳이 대한민국인데, 그러한 신기(神技) 앞에는 너무나 무지한 민초들이 더욱 더 신기(神奇)하지 않느냐!?
하물며 나 같은 무지렁이도 대문만 열면 밥주발만한 CCTV가 홱 돌아와, 그 큰 눈알을 굴리며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겁을 주며 딱 비추기도 하고, 더러는 인사를 하는 듯 사람을 놀리는 듯 눈알을 좌우로 아래위로 까딱거리기도 하는데, CCTV를 피해 동네 한바퀴를 돌 수 있는 사람이면, 가히 이시대의 도인(道人)이 아니겠느냐!?
역사라는 이름으로 흘러온 긴 세월 속에, 아침에 멀쩡하던 사람이 저녁에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대문밖에도 나간 적이 없는 분이 객사(客死)를 당하시고, 오복(五福)을 갖출 대로 갖추어 절로 어깨춤을 추지 않고는 못 배기던 사람이, 갑자기 후원(後園) 고목(古木)에 목을 맨 일들이 어찌 필설(筆舌)로 다 기록을 하겠느냐!?
더구나 지금은 자살을 했다는 말보다, 자살을 당했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 오늘날의 일이 아니냐!? 그러니 이 일을 두고 부질없이 앙앙불락(怏怏不樂)할 일이 못되느니라. 만사(萬事)는 귀본(歸本)이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며,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니라.”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나라에는 엄연(儼然)히 나라법이 있는데, 국민청원이 2십만이 넘으면 운운(云云)하는 것은 어디에서 근거한 법이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과거에 선전선동(宣傳煽動)으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죽창으로 찔러죽이던 인민재판(人民裁判)이 있었지 않았느냐?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때려죽이고 찔러 죽이는 짓은 차마 못하니, 선전선동하며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죽이고, 저희들만의 공론으로 심판을 하자는 새로운 인민재판이 아니냐!?” 한다.
연작이 연이어 묻되
“풍계리핵실험장 폭파쇼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쇼입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핵개발을 중단한다면서 보여준 영변의 쇼는, 실질적으로는 본격적인 핵개발을 알리는 신호였으니, 이미 폐허가 다된 풍계리핵실험장 폭파쇼는 핵개발의 완성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남쪽의 바지는 핵실험장 폭파는 비핵화의 첫걸음이라고 떠벌리지 않느냐? 쇼는 말 그대로 쇼일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겠느냐? 지금 하는 짓을 보아라! 심보를 쓰는 것이 개차반이니, 하는 짓거리와 내뱉는 말이 조변석개(朝變夕改)가 아니냐!? 지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고,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이니, 믿을 만한 것을 믿어라 해야지, 누굴 보고 무엇을 믿으라는 말이냐?!” 한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니 청맹(靑盲)이요
입을 열고도 바른말 한마디를 못하니 반벙어리로다.
어르고 희롱(戱弄)함을 참으로 아니 누구의 허물인가!?
바로 보고 바로 알아 은혜를 갚지 못하면
어찌 장부의 본분사(本分事)를 다했다 하겠는가!?
<작성 - 2018년 5월 21일(음력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