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량급풍(鼻粱急風)>
연작이 묻되
“어찌해야 눈앞을 다잡아 놓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다급(多級)하고 황망(慌忙)하여 말을 거꾸로 집어타고 달리다가, 등 뒤에서 들리는 폭포소리에 문득 즉(卽)하고, 준마(駿馬)를 타고 나아가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은산철벽(銀山鐵壁)이 앞을 가로 막으니 문득 즉하고, 파발마(擺撥馬)를 타고 등 뒤에 전령기(傳令旗)를 휘날리며 몸을 숙이고 달리며, 주마간산(走馬看山)하다가 문득 즉하는 자리가 있으니, 이를 일러 주마삼관(走馬三觀)이라 하느니라. 이래도 의지하고 머물러 연연하는 명상(瞑想)을 참구(參究)라 하며, 청맹(靑盲)이 사람을 인도(引導)하듯 세상을 속이려 하느냐!? 의식(意識)을 정화(淨化)하여 인식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명상이요, 의식을 여의어 걸림 없는 본래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참선(參禪)이니, 의식을 의지하면 천만겁을 흘러도 염념(念念)의 흐름인 생사(生死)의 물결속이요, 의식을 여의의 염념의 흐름이 끊어지면, 강이 없어지니 강남강북이 없어지듯, 생사가 없는 자리로 돌아가느니라. 생사가 이러하듯, 눈앞의 일도 계교(計巧)를 부리지 않고 정도(正道)를 따르면, 만사(萬事)가 형통(亨通)이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무엇이 금강승(金剛乘)을 착각(錯覺)하는 일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안양(安養)을 지나 불광동(佛光洞) 가는 이정표(里程標)에 ‘번뇌(煩惱)를 안고 열반(涅槃)에 든다.’하고 써놓으니, 번뇌(煩惱) 즉(卽) 열반(涅槃)이라는 말귀를 잘못 알아, 아리수(阿利水)를 건너다가 곧장 서해바다로 흘러가는 거와 같으니라.” 한다.
연작이 이어서 묻되
“어찌해서 콧잔등의 바람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합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불확실성(不確實性)의 시대라 하니, 이제는 10년 후를 예측(豫測)할 수 없는 시대라며, 따라가는 교육을 벗어나 앞서가는 선도교육(先導敎育)이 되어야 한다며, 장학사 선생님들과 교육연구관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있는 시대이다. 예측 가능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자유(自由)와 방종(放縱)을 혼동(混同)하게 하고, 통찰(通察)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통찰(洞察)과 다름이 없다. 그것은 치도(治道)에 있어서도 다름이 없느니라.
시대가 바뀌었다고 어찌 시절을 욕되게 하는가!? 아무리 시대가 춤을 춰도 시절을 구가(謳歌)하는 것은 사람이니라. 어찌 산을 보지 않고 숲만 보아 단정(斷定)하겠느냐? 산정(山頂)에 올라 한눈에 보는 산과 숲속에서 살피는 산은 또 다른 모습이니라. 올바른 불확실성이란 통찰(通察)을 바탕으로 하는 무한무애(無限無礙)의 무극통찰(無極洞察)을 말함이니라.
껄떡 욕심이 세련(洗練)되니 골동품(骨董品)과 예술품(藝術品)에 욕심을 내며 취미(趣味)가 고상(高尙)함을 자랑하고, 벌춤이 세련되니 카바레 제비가 되어서 예술을 운운(云云)하듯, 무지(無知)가 세련되니 명사(名士)라는 이름을 얻고, 무지(無智)가 극(極)에 달하니 큰사람이라 칭송(稱頌)하는 세상이다. 자! 눈앞이 이러하니 장래(將來)를 어찌 모르겠느냐?”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무슨 뜻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점입가경은 점점 재미있는 경지(境地)나 경계(境界)로 들어간다는 뜻이나, 그 점입가경이 진진가경(津津佳境)이 되면 다행이나, 진진가관(津津可觀)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災殃)이 되느니라. 개가 꼬리를 내려 다리사이에 감추고도 짓는 척하는 것은, 두려움이 극(極)에 달했으나 지금까지 지어온 버릇이 그렇다는 뜻이니, 시간과 기회를 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계관이가 오히려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어쩌고를 운운하며,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 극에 달한 폐성(吠聲)이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니더냐?
지금 눈앞은 점입가경이니, 그것이 진진가경이 될지, 진진가관이 될지는 이미 판가름이 나있으나, 아둔한 안목(眼目)들이 보지 못할 뿐이니라. 이런 판에 풍계리 쇼를 구경하고 난 트럼프아재가,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에 비용을 분담해달라는 요청은, 일석오조(一石五鳥)를 노리는 고단수(高段數)가 아니더냐? 그러자 엊그제만 해도 남쪽과는 마주할 수 없다는 북쪽의 바지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남쪽바지와 화급(火急)히 만나자고 하니, 남쪽바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한다는 소리가 또다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재주부리기뿐이니, 이제 일은 점입가경이 될지, 진진가가관이 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가 아니겠느냐.
그러나 트럼프아재가 ‘나와 정은이를 한방에 몰아 넣어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하고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보니, 이러다가 정은이 입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미투가 터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 아니지 않느냐.” 한다.
성외일음(聲外一音) 묘진색(妙眞色)이라
서천의 옛 노래 곡조(曲調)는 한결 같은데
시대를 잘못 알아 시절로 착각(錯覺)하니
일마다 난사(難事)요 들리느니 난성(亂聲)이로다.
<작성 - 2018년 5월 28일(음력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