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구(業咎)>
연작이 묻되
“무엇이 업이고, 무엇이 허물입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바가 업이요, 업토(業土)에 함께하여 보고 들어야 함이 허물이니라. 강가에 배를 대는데 물고기가 깔려죽음은 사공의 업이나, 그것을 보고 듣고 아는 것은 나의 허물이니라.
삼독(三毒)에 이끌려 짓는 삼업(三業)은 악업(惡業)이니 악과(惡果)를 받음이요, 삼독을 되돌려 삼학(三學)으로 삼는 것은 정업(淨業)이라 하는 선업(善業)이니, 선과(善果)를 받는 이것이 곧 만고(萬古)의 큰 허물이니라.
지난날 어느 수좌가 악업은 참회(懺悔)할 길이 있으나, 선업은 참회할 길이 없다 하자, 삼소굴(三笑窟)의 한 노인이 악업은 참회함이 마땅하나, 선업은 참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가, 큰 낭패(狼狽)를 당한 일이 있지 않았더냐?”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찬역(簒逆)을 획책(劃策)하여 도모(圖謀)하고, 찬역에 앞장서서 몸으로 행하고, 말과 글로서 호도(糊塗)하고 왜곡(歪曲)하며 행한 것은 당연히 업이라 하겠으나, 그러한 불의(不義)를 알고 보고 듣고도 외면(外面)함은 무엇입니까?” 하니
홍곡이 문득 노성(怒聲)으로 일갈(一喝)하되
“네가 끝까지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아둔함을 자랑하려 하느냐? 전자(前者)는 불의한 찬역의 죄업이나, 후자(後者)는 하늘땅을 속인 불의지인(不義之人)들이요, 불용지죄(不容之罪)이니, 어찌 그것이 업인지 허물인지를 논하느냐!”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어찌하면 업이 다하고 허물마저 씻을 수 있나이까?” 하니
홍곡이 그제야 노기(怒氣)를 거두고 이르되
“일체(一切)가 불류(不留)하니 무가기억(無可記憶)이요, 장강(長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생사가 둘 아니니, 방하(放下)하고 휴헐(休歇)하여 이룰 뜻마저 다하면, 마침내 일신면모(一新面貌)를 드러낼 수 있느니라.” 한다.
대붕(大鵬)이 날아오르니
용(龍)들과 봉황(鳳凰)은 가만히 엎드려 숨을 죽이고
만리무운(萬里無雲) 만리천(萬里天)이니
외로운 학(鶴) 큰 울음소리 아득히 하늘밖에 사무치네.
일제(一帝)가 칠왕(七王)을 부리며 천하를 다스린다 하니
칠지도(七支刀)를 하사(下賜)받은 제후(諸侯)들은
엎드려 감읍(感泣)하여 이마로 땅을 두드린다.
<작성 - 2018년 7월 2일(음력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