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6일 화요일

화두공안(話頭公案) - 제27관


<방하휴헐(放下休歇)>
 
연작이 묻되
어찌하여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능소(能所) 주객(主客)이 나누어지고, 능연소연(能緣所緣) 능취소취(能取所取)가 벌어지며, 능집소집(能執所執)의 분차별상(分差別相)이 일어납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물음이 고준(高峻)해야 답이 현묘(玄妙)하고,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 하였으니, 이제 현묘함이 오히려 고준함을 감당(堪當)하지 못할까 두렵도다! 그러나 허물로써 허물을 살피니 허물만 더할 뿐이로다.
허물을 씻고 나면 아소(我所)와 의소(意所)와 심소(心所)와 공소(空所)가 모두 부질없으니, 허물 가운데서 허물을 알지 못하니, 어느 때에 허물을 바로 알아 허물을 씻고, 간월대(看月臺)에 올라 일취무공소(一吹無孔簫)로 은혜를 갚겠느냐!?
장부는 은원(恩怨)이 분명하고, 장부의 은원은 추상(秋霜)같아야 하는 법, 원수(怨讐)의 은혜마저 바로 알아 허물을 씻지 못한다면, 돌아가 쉴 곳이 어디이겠느냐?” 한다.
 
연작이 다시 묻되
만파식적(萬波息笛) 옛 곡조(曲調)는 삼천대천(三千大天)에 사무치는데, 어찌하여 성외일음(聲外一音) 묘진색(妙眞色)은 보고 들을 길이 없습니까?” 하니
홍곡이 답하되
눈앞에 있음이 분명하고 분명하여, 의지하여 내려놓고 쉬어버리지 못하니, 칠통(漆桶)속에서 무엇으로 명암(明暗)을 분별하며, 허물을 씻지 않고 어찌 일신면모(一新面貌)를 드러내겠는가? 성외일음 묘진색은 고사하고, 머리가 백발이 되면 자연히 가슴의 색깔도 다 없어져 일체를 품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 흰머리를 감추려고 머리에 색을 칠하고 다니니, 일평생 가슴에 그려온 색깔이 지워지지 않아, 무엇 하나도 품을 자리가 없지 않느냐?
부모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억겁(億劫)이 흘러도 보답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부모의 목숨을 구해준 은공(恩公)의 자식을 해하고, 나라의 치도정로(治道正路)와 만년대계(萬年大計)를 망치고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자고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않는 것이 옳다는 옛말이 허언(虛言)이 아니지 않느냐?” 한다.
 
연작이 또다시 묻되
“‘여하시(如何是)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 일체제불이 몸 나툰 곳)?’ 하고 물으니,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동쪽 산이 물위로 간다.)’이라 하였다는데, 만약에 누가 와서 묻기를 하이고(何以故)로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오?’ 하고 물으면 무어라 일러야 하오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 앞에 잣나무.)가 판치생모(板齒生毛, 대문니에 털이난다.)이니라.” 한다.
 
어미 잃은 상주(喪主)는 외눈으로 눈물짓고
아비 잃은 상주는 무영사(無影裟)로 복()을 입으니
복상(複喪)을 당한 이는 어느 입으로 곡()을 하고
스승을 여읜 이는 어느 몸으로 복을 입는가!!?
 
<작성 - 2018625(음력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