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7일 수요일

제1장 춘몽예어 - 11. 만목청산(滿目靑山) (p.356-357)


- p.356-357 가운데 일부 발췌 -

(*행주좌와어묵동정에 경계와 대상사물에 대하여 밖으로 끌려가지 않고 안으로 준동蠢動하지 않아, 주객능소主客能所가 일여一如하여 일체산란一切散亂과 일체의 분별사량分別思量이 영절永絶함이 선정禪定이며 삼매三昧이니, 이 때에 유념아상공소有念我相空所가 사라져 사지四肢가 빠져나가고 머리를 잃어버려 비추는 바탕만이 오롯이 서며, 짓는 바 휴휴헐헐休休歇歇에 일념이 만년이고 만년이 일념이라, 눈앞의 당금當今이 태고太古에 뻗혔으니, 편안하고 편안한 무공용의 안락처安樂處도 한갓, 의지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주생流住生임을 미처 모르고, 길고 긴 여정에 물 좋고 정자亭子 좋은 곳을 만나 편안하고 편안하여, 모두가 망월루望月樓와 승묘정勝妙亭에 여장旅裝을 풀고, 무기업無記業에 안락하여 날 가는 줄을 모른다.

이 중에서 날카로운 근기는 문득 알아차려, 홀로 여장을 챙겨 표연飄然히 길을 재촉하니, 표표表表히 딛는 걸음걸음 사뭇 그 의연毅然하고 장한 의기意氣가 하늘땅에 사무친다. 의기장부義氣丈夫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몸을 뒤집어 크게 용트림하고 활로活路를 뚫어, 위로 통하고 아래로 사무쳐 자리 없는 근원에 도달하니, 응연히 공공적적空空寂寂 원명부동圓明不動 성성자성猩猩自性을 보아 진여법계眞如法界에 계합한다.

비록 참선행자가 애쓰고 밟아가야 할 바 공로公路가 대강은 그러하나, 대문 앞의 모든 길은 황성皇城으로 통하니, 어찌 빠름과 느림을 따지고 대도大道와 첩경捷徑을 나누리요마는, 공문空門의 조조상전祖祖相傳 정안정로正眼正路 정전안목正傳眼目이 허가하는 깨침은 오직 돈오頓悟만을 인정하니, 무릇 깨침은 지극하고 지극하여 깊고 깊게 깨쳐, 위로 통하고 아래로 사무쳐, 다시는 어긋나지 않는 대무심지大無心地를 일호一毫의 착오도 없이 바로 밟아 가야하는 것이다.

더러는 가상일여假相一如의 경계와 진정승묘眞定勝妙의 경계를 잘못 알아, 번뇌망상의 기멸起滅이 여전하고 시공간의 요동搖動이 여전한데도, 그동안 보고들은 풍월風月에 대한 좋아하는 기억이 사무쳐 있어, 정력定力과 지력智力이 함께함도 없이, 눈앞의 물아物我가 일여一如한듯 하고, 앉은자리 아상망소我相網所를 잃어버린 듯이 허전한 듯 서늘한 듯 느껴지는 가경假境을 얻어, 선우善友를 찾아가 자못 기대를 걸고 이러한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를 물으니, 맞이하는 이가 행여 그간의 작은 애씀이라도 그르칠까 염려하여, 일언반구一言半句 수고를 치하함도 없이, 안색을 바꾸어 그저 평소대로 의정을 놓치지 마라 하니, 물러가는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歷歷하다. 또한 오랜 세월 제방 노스님들을 지근至近에서 모시며 법문을 두루 익히고, 그동안 보고들은 음풍농월吟風弄月에 취해서 풍월삼매風月三昧에 빠진 보살이 선우를 대하여 “저도 금생에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선우는 이미 그 물음 속에 “부처가 꿈을 꾸니 중생이요, 중생이 꿈을 깨니 부처라,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부처를 만나려고 십겁十劫동안 앉아 있었으나 끝내 부처를 만나지 못해 다함을 듣지 못했는가? 어느 때에 미혹한 적이 있었기에, 이미 오래전에 성불한 옛 부처가 어찌 다시금 부처를 거론하는가?” 하고, 또 다른 한가락 솜씨를 내보여줄 것을 바라는 은근한 기다림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원하여 기다리는 이에게 원하고 기다리는 곡조를 들려주어, 마침내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구덩이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기다리는 바에는 일언반구의 대꾸도 없이 달리 은밀히 한 곡조를 들어 보이니, 풍월보살이 아득하여 알아보지 못하고 실망하여 “선지식이 아니구나!” 하고 자못 탄식하며 물러간다.

도반道伴들이여! 세상의 달사현인達士賢人은 자취가 없다함을 듣지 못하였는가? 풍월을 익히는 재주는 있으면서 어찌 선지식이 사람을 제접提接하는 솜씨를 알아보는 눈은 갖추지 못했는가!

의심이 커야 깨달음도 크다 하였으니, 깨침은 반드시 태허太虛를 품은 본원대의정本元大疑情을 바탕으로 참구하여, 태고太古의 옛 빛 그 근원을 뒤집어서, 통하여 거침이 없고 사무쳐 걸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며, 대정대혜大定大慧의 받침이 없어 얻은 자리가 침침沈沈하고 흐릿하여 불명不明하면, 다시금 기다리는 세월이 참으로 녹록碌碌치가 않을 것이다.

신심이 바르고 발심이 지극하면 정법의 인연은 어김없이 나타나고, 바른 수행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참다운 시절인연時節因緣은 절로 다가오니, 이는 스스로 갖추어 호지護持한 삼신불三身佛의 가피加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