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된 귀농귀촌(歸農歸村)보다는, 마음 붙여 가슴으로 안착(安着)할 귀향(歸鄕)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상생(相生)은 상생을 외치는 자들만의 상생이 아니라, 상생을 외칠 기력조차 없어, 상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과도 더불어 가야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 아닌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앞 다투어 내놓는 정책이 젊은이들의 귀농귀촌(歸農歸村)이다. 그러나 막상 귀농귀촌의 현장에는 그들이 기획한 귀농귀촌 이외에는, 귀농다운 귀농을 하기에는 어느 한곳에도 제대로 된 귀농의 문이 열려있지 않다. 지금의 이 나라 농어촌이 어디 만만히 볼 농어촌이던가!? 혜택이 없고 누리는 것이 적은 몇몇 곳은 폐가(廢家)가 늘어간다지만, 그 폐가들도 막상 손을 대려고 하면 알게 모르게 쳐놓은 장벽이 하나둘이 아니며, 그 허물어져 가는 폐가들마저도 폐가를 가장한 채, 귀농귀촌자들을 무슨 봉으로 알고 기다리는 곳이 허다하다. 그리고 대다수의 농어촌에는 자신들이 누리고,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을 나누기 싫어하는 욕심 많은 사람들과, 농어민을 가장해서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또 다른 자들의 술수로 인해, 대부분이 귀향과 제대로 된 귀농귀촌의 길이 철저히 막혀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민속과 생태, 전통과 환경, 문화와 예술 등을 비롯한 별별 이름들을 앞세워, ‘무슨 촌, 무슨 마을, 무슨 동네’라는 특화된 마을임을 표방(標榜)하며, 고향 떠났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살아갈 집 한 채조차 지을 수가 없도록 법적 장치를 해놓고, 자신들만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곳이 부지기수인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농어촌의 숨겨진 인심이요, 순박(淳朴)한 순민(順民)의 탈을 쓰고, 농어민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또 다른 기득권들이며, 짐짓 초부가(樵夫歌)를 부르며, 영악함을 무지렁이라는 포장지로 감싸고서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개방개혁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숨은 대적(大賊)들이다.
그 가운데서 농어촌 요소요소(要所要所)를 차지하고, 앞으로는 한없이 너그러운 척 연신 ‘이런! 저런!’ 소리를 해대고, 허허소리를 연발하며, 이 선생, 김 선생, 박 선생이라 부르며, 다정함과 너그러움으로 혼을 뺀 뒤 후려치는, 소위 그 지방유지라는 이들의 객지에서 온 사람들 뒤통수 치는 솜씨는, 당하고도 계속 발붙이고 살려면 어떻게 한번 입도 열어보지 못할 환장할 지경이니, 정치가 구단이니 십단이니 자랑하는 중앙정객들도 아마, 한번 당해보면 그 매끈한 솜씨와 빼어난 고단수(高段數)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그들의 헛기침소리 한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의 입가에 번지는 알듯 말듯한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해본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농어촌과 농어민은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농어촌이라는 국민정서와, 막연히 이 땅의 약자들이요 서민이라는 이미지를 풍기는 농어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국가정책의 수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당시에는 어려서 잘 몰랐으나, 후일 대학을 관련학과에 다니면서 조사한 바로는, 지난날 노태우 정권 때부터 자고나면 부동산가격이 올라가던 시절, 부모가 되어서 농촌농협과 어촌수협에 빛내어서 도시에 사는 자식들 집 한 채 못 사주면 능력 없고,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부모취급을 받았다 하니, 가히 그 당시의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고서 대출받은 빚 갚을 생각은 않고서, 농사짓고 고기 잡아 모은 돈은 도시의 자식들과 자신들 부동산투기에 쓰면서, 훗날 그 빛이 누적되자, 마치 농사짓고 고기 잡으려다 빛이 누적된 것처럼, 농어촌 부채탕감을 요구하며, 못 살겠다 소리를 외쳐대던 곳이 바로 우리의 농촌이요 어촌이다. 그리하여 농어촌표심을 등에 업고,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의 선전선동이 가세하여, 역대정권들로부터 얻어내어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것이, 제세공과금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손에 쥔 것이 없으면, 어디 한발자국도 내디딜 곳 없는 도시서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파격적 혜택이며, 그 혜택이 침해받을 기미가 보이면 여지없이 나오는 것이 바로, 속에는 너구리와 능구렁이를 품고, 시골무지렁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가장한 떼거지들의 억지전술이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도 무지렁이이면, 이 나라가 무지렁이 천지란 말인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도 시절이 변하니 이제는 옛말이 된지가 오래이다. 지난날 순수했던 농촌에는 지난날 순박했던 농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전이고, 그 순박했던 선민(善民)들은 농사지을 땅 한 뙤기 없어 고향을 떠났다가, 오늘날 오도 가도 못하는 도시서민들로 전락한 지가 오래전이며, 지금의 그 땅에는 영악한 투기꾼들과, 무지렁이를 가장한 욕심으로 가득한, 무어라 이름조차 지어 부를 수 없는 대를 이은 지주(地主)들의 후예(後裔)와, 농어민을 가장하여 다른 목적을 추구하려는 자들로 채워진 지가 이미 오래이니, 귀농귀촌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도 높으신 양반들의 실적내기용 생색일 뿐, 돌아가 마땅히 몸 붙일 곳을 찾는 귀향자들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농촌을 꿈꾸는 젊은 지자(智者)들의 귀농귀촌과는 거리가 먼 일일 뿐이다.
먹고사는 근본이었던 농업과 어업과 축산업이, 잘되면 나의 이익이요, 잘못되면 정부의 잘못된 시책 탓으로 돌려, 농사 다 지은 땅을 갈아엎고, 농산물을 도로에 쏟아 부으며 억지를 부리는,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양심불량자들에 의해, 이제는 투기로 하는 사업으로 전락하였고, 또한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의 대정부투쟁 전략사업으로 전락하였으니, 그들의 마음가짐인들 옛사람들과 같기를 바라는 것조차도 무리일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미 자신들보다는 상부자(上富者)인 농촌을 옛 농촌으로만 기억하며, 옛 농촌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농사지을 땅 한 뙤기가 없어 도시로 향했다가, 이제는 발붙일 곳도 없고, 돌아갈 고향조차도 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마냥 철없고 착하기만한 도시의 유랑민(流浪民)들인 도시서민들이다. 이 도시의 유랑민들은 아직도 먹을 쌀 걱정을 하는데, 다 지은 벼논을 갈아엎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농약 없이는 농사가 아예 안 되는 것처럼 농약을 뿌려대며, 일손 타령을 앞세워 손쉽게 지은 농산물과, 검증도 되지 않은 식물호르몬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면서 키워낸 과일들도, 신토불이와 국산농산품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당당해지고, 가두어 놓고 농약범벅인 볏짚을 먹여서 키우고, 수도 없이 항생제를 투약하면서 키우고도, 청정한우(淸淨韓牛)요 청정한돈(淸淨韓豚)이니, 방목하여 키운 수입산 고기보다 턱없이 비싸더라도 너희들은 끽소리하지 말고 먹으라는 그 당당하고 뻔뻔함도, 농어촌 표심을 등에 업고 얻어낸 그들의 자만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참으로 탐욕으로 눈이 가려진 무지의 발로인가?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농어업과 축산이 마치 뇌물전용 상품과 선물전용 상품만을 생산하고, 접대용식품 전담생산 산업인 것처럼 부패방지법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니, 참으로 가관이다.
이 나라 모든 산업전사들이 수출전선에서 피나는 경쟁을 딛고서 나라발전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 나라 농촌은 무슨 이유로 끝없는 혜택과 보호만을 바라는가!? 전기료폭탄의 최대피해자인 도시서민들이 사용하는 전기와, 농어촌 부농(富農)들이 사용하는 전기가 생산단가가 다른 전기인가? 오갈 데도 없는 도시서민들은 천덕꾸러기이고, 자리차지하고 사는 농어촌 사람들은 보호받고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서, 모든 제세공과금과 각종세금이 그렇게 차이 나게 대접하는가!? 농촌농기구는 웬만한 것은 다 무상수리를 해주는데, 도시서민들 생계용 차량은 고사하고, 생계용 배달오토바이 터진 타이어라도 한번 때워준 적이 있는가? 사람이 없다는 농어촌 구석구석 면소재지마다 소위 티켓다방이라는 것이 기본이 열이요, 스물 서른이 넘는 곳이 허다하다 하니, 그들의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의 수준이, 도시서민들은 흉내도 못 낼 일이 아닌가?
지자체들의 쪽수 채우기 위한 기획된 귀농귀촌정책보다는, 유랑의 가슴들이 마음으로 안착할 진정한 귀향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정부와 지자체가 진심으로 이 땅의 뜻있는 젊은이들의 귀농귀촌과 귀향을 바라고, 그들이 농어촌과 고향으로 돌아가 욕심부리지 않고도, 진실한 마음으로 잘살아가는 한 단계 도약한 농어촌을 일구기를 바란다면, 지방자치제가 된 후 더욱 심화된 농어촌 기득권자들의 행태와, 지자체의원들이 포함된 은근하고도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귀농귀향 방해전술을 제대로 파악하고, 심지어 시골마을 이장(里長)만 되어도, 내심으로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귀농귀촌을 원하는 이들이 진정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제도적(制度的)인 귀농귀촌보다는 가슴으로 안착할 자유로운 귀향을 바란다는 그 마음들을 헤아려, 올바른 귀농귀촌정책을 펴주기를 간곡히 당부 드린다.
물색모르는 정부의 높으신 양반들이 생각하는 귀농귀촌과, 농어촌 기득권자들인 기존 농어민들과 그 지방의 권력자들이 생각하는 귀농귀촌은 전혀 다른 것임을 왜 모르는가!? 그들이 원하는 귀농귀촌은 지자체의 머리수 채우기 귀농귀촌이고, 그들의 누림에 피해를 주지 않고, 굴러들어온 돌들로서 분수를 지키며, 농어촌 기득권 편리를 위한 만만한 젊은 일손으로서의 귀농귀촌이지, 그들이 무엇이라 하던 간에, 그들과의 대등한 입장에서 모든 것을 나누는 귀농귀촌이 절대 아님을 왜 모르는가? 대물림을 해줄지언정, 대부분이 기존회원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농협협동조합회원이 되고, 수협회원이 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곳이 이 나라의 농어촌이다.
진정한 상생은 하늘아래 만민이 빠짐없이 하나 되어, 다 같이 손잡고 함께 일구어 가는 만민위공(萬民爲共) 대동일단(大同一團)의 세상이다. 이 나라가 진정한 화합의 땅이 되고, 기득권들만의 상생(相生)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만민상생의 땅이 되어 무궁(無窮)하기를 바란다면, 이제 어느 한곳도 마음 붙일 곳 없어, 가슴은 늘 고향산천을 안고 떠도는 도시의 유랑민들과, 고달픈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마음 붙이지 못하는 이 땅의 젊은 유랑의 영혼들을 위해, 도시와 농촌의 모든 기득권영역을 빠짐없이 해제하고, 이 나라 곳곳마다 봉쇄(封鎖)된 문을 개방하여, 만민(萬民)이 진정 자유로이 다닐 수 있도록 진로(進路)를 열어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제도적으로 여는 개혁개방과 더불어, 가슴으로 여는 개혁개방이 함께 수반되지 않는다면, 어찌 이것을 진정한 개혁개방이라 하겠는가?
그러한 진정한 개혁개방이 실현되지 않아, 결속력과 화합이 상실된 국가라면, 그 무엇을 성취하고 이루더라도, 그것은 잠시 강변에서 모래성을 쌓는 일일 뿐이니, 끝내는 도도한 격랑을 이기지 못하여, 쇠멸(衰滅)과 망국(亡國)의 길로 들어서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모두가 명심해야할 것이다. 몸 붙일 곳 없어 몸이 떠도는 이들도 유랑민이지만, 마음 붙일 곳 없어 가슴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 땅의 젊은 영혼들도 유랑민인 것은 매한가지가 아닌가? 언제까지 유랑하는 영혼들을 방치할 것인가? 이 세상이 유랑하는 영혼들이 늘어나는 세상이 된다면, 언젠가는 그 유랑하는 가슴들은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 못하고,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에 가면 이 땅을 횡횡(橫橫)하고, 이 세상을 난무(亂舞)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조금만 눈을 뜨고, 조금만 가슴을 열고 보면 다 보이는 것을, 어찌해서 모두가 보지 못한단 말인가? 정치가라는 사람들은 서로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치고, 교육자와 종교지도자들은 앞 다투어 세상을 바로 이끌어 가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어디에다 정신을 팔고, 무엇에 눈이 멀어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상생은 상생을 외치는 자들만의 상생이 아니라, 상생을 외칠 기력조차 없어, 상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가야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임을 왜 모르는가!? 이제 모두가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지고, 시력이 약해져 눈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아름다운 은퇴라는 말도 있고, 요양보험제도가 잘되어 있다는 이 나라에서, 무엇이 근심이 되어 진퇴를 결정하지 못하고, 보기에도 불편한 노욕들을 앞세워 온 세상이 근심하게 하는가!?
숲속 바닥의 미세 환경구조의 변화가 그 숲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자연생태 하부(下部)의 미세구조의 변화가 식생(植生)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자연생태환경과 심지어 유전적인 분야에서도 변화의 근원이 되듯이, 민생의 바닥구조의 변화가 세상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아직도 몇몇 지도자들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간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훌륭한 지도자의 역할은 바닥에 잠자는 씨앗들이 깨어나 싹 틔워 꽃피게 하여, 바닥에 잠자는 모든 씨앗들이 백화가 난만한 세상의 일원이 되게 하여, 온 세상이 상생의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 자신의 뜻대로 세상의 변화를 결정짓는데 있지는 않은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몇몇 지도자들의 생각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바닥의 가슴들이 결정짓는 것이며, 저 맨 아랫자리 바닥의 가슴들은 저 맨 위쪽 하늘의 가슴들과 통해있기에, 그래서 민심이 곧 천심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여태껏 바닥민심을 입에 담고, 기초교육을 입버릇처럼 외어온 분들이 그러한 개념조차도 없이, 모두가 이 땅의 대권을 노리는 대권주자요, 이 나라의 정치가요, 교육자요, 세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임을 자처하십니까? 여러분들의 가슴에 이 나라 젊은이들의 미래가 있고, 통일조국의 미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나라를 위하고, 통일을 대비하는 이들을 틈만 나면 헐뜯습니까?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고,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모습이 진정 사람모습이 맞고, 직분과 직위와 나이에 걸맞는 모습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