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여의도살롱 - 39


<제3지대라는 상품은 출시도 하기 전에 페기처분 되는가!>

근래에 많은 국민들이 대충 짐작은 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입지가 하도 아리송해서, 말하는 이들의 명확한 의도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 제3지대라는 말이다. 제3지대를 말하는 사람들의 명확한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곳이 제3지대인가? 아니면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제3의 편이 제3지대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난날 많은 국민을 흥분시키며, 신기루(蜃氣樓)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새정치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유야무야(有耶無耶)로 끝나는 것이 제3지대인가? 그것 또한 아니면,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기회를 엿보며 저울질하다가, 시세(市勢) 따라 싹쓸이의 기미가 보이는 센 놈들 편에 붙자는 것이 제3지대인가? 그것마저도 아니면, 세력이 약한 정치인들이 어정쩡한 자기입지를 높이고, 새로운 정치적 야합(野合)을 미화(美化)시켜 보려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政治的 修辭)인가?

그러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국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들만의 필요에 따른 정치적 이합집산(離合集散)인 제3지대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진정한 자기성찰로 자기역량 자기분수를 아는 일이며, 이것과 저것을 모두 뛰어넘는 제1의(第一義)를 바랄뿐이다. 지금까지 제3지대를 거론해온 이들도, 제3지대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자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었는가? 제3이란 말은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것이 제3이요, 1안(一案)도 아니고 2안(二案)도 아닐 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 제3안(三案)이며, 이 인물도 아니고 저 인물도 아닐 때,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내세우는 것이 제3의 인물이듯이, 제3이란 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국민들이 바라고, 국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최선이 아니지 않는가?

새까만 얼굴들이 모여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온다고 해서, 어느 누가 그 얼굴을 흰얼굴이라 하겠는가? 이제는 그것마저도 자칫하면, 개헌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니,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주저앉는 곳이 하필이면 소똥 위라더니, 운이 따르지 않으니 강진칩거의 2년 세월도 허송세월(虛送歲月)이 되고 마는가! 아무리 권력이 좋고 부(富)가 좋더라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어디에다 담는단 말인가? 어찌해서 모두가 욕심을 부리기 전에, 담을 수 있는 자기그릇이 얼마만한 것인지를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수없이 거듭한다 해도, 남의 그릇이 내 그릇이 될 수는 없고, 더구나 그 담는 것이 권력과 부라면, 남의 그릇에 내 것을 담을 수는 없지 않는가? 남의 그릇에 담은 권력과 부가 어찌 내 것이겠는가?

그리고 정당한 부는 정직한 노력의 대가요, 통치자의 권력과 공권력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은 직위와 직분에 따라, 법적 근거로 부여받고,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위임받아,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국가권력을, 나와 내편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권력을 도둑질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직위와 직분대로 주어진 것을 벗어난 월권(越權)은 국가권력을 강도질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가슴 깊은 곳에 이러한 성찰의 마음도 없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이루려고, 밤낮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구차(苟且)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지대를 논한단 말인가?

진정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고, 올바른 치도(治道)에 뜻이 있다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제3안과 제3지대를 위한 야합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당면한 중대사가 무엇인지를 헤아려, 이것과 저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우선 안을 찾아, 국가와 국민 앞에 내놓는 것이 바로, 치국(治國)의 뜻을 가진 이들의 올바른 도리가 아니겠는가? 서로 먹이를 차지하려고 물고 뜯는 것은 짐승들이 하는 짓이지, 그것이 어찌 사람의 짓이라 하겠는가? 그러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눈을 속이고, 그것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가? 신의(信義)가 없는 정치인은 일시적인 시류(時流)의 편승(便乘)은 얻을지라도, 그 가는 길이 한계가 있음을 왜 모르는가? 대권은 천의(天意)이고 그 천의가 곧 민의(民意)임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천의와 민의는 신의가 바탕인 줄 모르는가?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서민들의 전기료폭탄을 금방이라도 해결할 듯이 큰소리치더니, 그 사이에 모두가 까마귀고기라도 먹었단 말인가? 이제 개헌정국 속에서 대권의 향방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니, 그까짓 사소한 일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단 말인가? 개헌과 야합만 중요하고, 국민들과의 그런 사소한 신의(信義)가 대권을 결정짓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과연 알기나 하는가? 추위가 눈앞인데, 서민들의 삶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다가오는 이 겨울 엄동설한(嚴冬雪寒) 설한풍(雪寒風)에 내던져진, 압록강변 두만강변의 저 북녘 형제들과, 중국땅을 떠도는 탈북민들의 고초(苦楚)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 저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보았는가? 개헌이라는 말이 나오니, 지금까지 공들여온 일들이 모두가 공염불이 되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까봐, 하나같이 계산기 두드리기에 정신들이 없다.

그러나 30년 만에 시도되는 이번 개헌은 권력구도와 통치구조의 재편(再編)을 위한 개헌만이 아니라, 마땅히 통일준비의 밑바탕이 되는 통일대비의 헌법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하고, 통일을 대비한 정지작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개헌의지가 무엇이겠는가? 과연 몇몇 사람의 말대로 국면전환용이겠는가? 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블랙홀이 필요해서인가? 이러한 치졸한 계산과 여우같은 의심의 눈초리는,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시대적 요구에 응하고자 하는 통치자의 순수성과 진심을 욕보이는 것이고, 스스로의 자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양반이 언제 한번이라도 정치적 술수를 부릴 줄 알던 양반인가? 이것을 어찌 깜짝 개헌이라 하는가? 앉으나 서나 나라걱정 한다던 양반이 하루 이틀에 생각한 일이겠는가? 눈앞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고자, 오랜 날을 고심하고 궁리한 끝에 최선의 복안을 찾았기에, 마침내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통 큰 정치를 이야기하던 그 큰 통들은 어디에 두었기에, 모두가 여우같은 마음들을 내는가? 모두가 무엇을 위하고, 무엇을 바라기에 정치에 몸을 담았는가? 과연 위국애민(爲國愛民)을 위한 헌신(獻身)의 뜻이 있어서인가? 한목숨 초개(草芥)같이 내던져 약일신멸(若一身滅)하더라도, 오직 구국충절(救國忠節)의 대의로 살고 싶어서인가? 가슴속에 호국(護國)과 보국(輔國)과 위국(爲國)의 충정(忠情)이 들끓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정치에 발을 내디뎠는가? 아니면 다만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이 눈앞에 아른거려 정치판에 뛰어들었는가? 가슴속에 국가와 민족과 국민이라는 단어가 새겨지지 않은 자들이라면, 모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국가권력을 도둑질하고, 강도질하려는 자들이 아닌가? 국민들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눈앞의 갈 길이 기로(岐路)인데, 권력과 치부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최하책(最下策)인 제3책(第三策)을 위한 야합만을 도모하지 말고, 눈앞의 중대사가 무엇인지를 헤아려, 기로에선 국가진로의 최우선책을 찾는데 뜻을 모우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앞에 선 이들이라면,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요, 책무가 아니겠는가!? 세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 정치이고, 세상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것이 언론인가!? 허물이 있으면 뉘우치고,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고, 부끄러움이 있으면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의는 너그럽고, 그 너그러운 천의가 곧 민의가 아니던가? 그래서 “회개(悔改)하는 자에게는 사(赦)함이 있다.” 하였고, 또한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라 하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