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丈夫)>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집고 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장부수사심여철 丈夫雖死心如鐵
장부는 비록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마음가짐이 무쇠와 같아야 하고,
의사임위기사운 義士臨危氣似雲
의기지사(義氣志士)는 비록 위기에 처하더라도
운심기색(運心氣色)이 구름처럼 여유로워야 한다.
앞의 글은 조선 선조조(宣祖朝) 임진왜란 당시, 삼남(三南)의 수군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글이고, 그 다음은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문신(文臣)이요 무신(武臣)으로, 당시 함길도 관찰사에 제수(除授)되어 육진(六鎭)을 개척하던 김종서 장군의 글이며, 마지막은 대한제국을 병탄한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 감옥에서 남기신 글이다. 모두가 구국충정(救國忠情)과 호국절의(護國節義)가 가득한 일대 장부의 글들이다. 구국의 충절(忠節)과 호국의 절의는 시대를 가르지 않았으나, 언제나 충절은 외롭고 절의는 힘겨웠으니, 지나온 세월 북악(北岳)의 충절과 상춘재(常春齋)의 절의인들 어찌 외롭고 힘들지 않았겠는가?
“뜻을 세웠으나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그것이 장부의 쓸쓸한 고준(高峻)함이고, 뜻을 세웠으나 그 뜻을 함께할 이가 없으니, 그것이 장부의 외로운 호기(浩氣)이고, 뜻을 세웠으나 그 뜻을 전하고 펼칠 곳이 없으니, 그것이 장부의 아쉬운 자분(自分)이라” 하였으니, 뜻을 펼칠 한자리 힘들여 얻었으나, 시절이 절박(切迫)하고, 눈앞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 모두가 눈감고 귀를 닫아 시절 뜻을 알리가 없으니, 둘러보니 외로운 곳 적막강산(寂寞江山)이요, 우러르니 머리 위에는 막중대사(莫重大事) 지천준명(至天峻命)이 아니던가!
연작(燕雀)이 홍곡(鴻鵠)의 뜻을 알길 없으니 수수천지(愁愁天地)인데, 공당(公黨)의 당대표요 원내총무라는 자들조차, 통치자의 치략치도(治略治道)를 신정(神政)이 어떻고, 영적(靈的) 정치가 어떻고 하면서, 치인설몽(痴人說夢)같은 수준 이하의 저속하고 천박한 입을 놀려대며, 마음껏 천학비재(淺學菲才)를 자랑하는데, 이 판국에 하물며 세상의 여우 원숭이들이겠는가! 눈앞의 개세지변(蓋世之變)에 잃을 것이 많은 무리들은 이판사판이라, 기필코 막고 저지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니, 이것저것 닿는 것은 가리지 않고 끌어들이며, 물밑작업 선전선동을 가리지 않고 결사항전(決死抗戰)이니, 물색 모르는 방방곡곡 천촌만락(千村萬落)이 덩달아 함께 미쳐 돌아간다.
미물(迷物)도 천재(天災)와 지변(地變)에는 낌새를 알아차린다는데, 참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없고, 생각나는 것이 없고, 짐작조차 되지 않는단 말인가? 모두가 그렇게 똑똑하고 많은 정보를 가졌다면서, 아직도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 한 입에 나라가 망하고, 한 손짓에 세상이 망하니, 천난만고(千難萬苦)인들 유구무언(有口無言)이요, 지엄봉명(至嚴奉命)이 지중하니 어찌하겠는가!? 장부가 힘들고 외로워야 나라가 사는 것이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올라 진일보(進一步)라, 허공중에 외발을 내딛으니 북산남악(北山南嶽)이 꺼꾸러지고, 부처를 잡아 배고픈 개를 먹이니 천하가 태평이라, 아리수(阿利水)를 들어 던져버리니 만년사직이 일시에 허물어진다. 자!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눈앞이니 모두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