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부름>
그렇게 원하던 개헌안을 내놓으니 블랙홀이 필요해서인가 하고, 나라의 결정을 왜 적에게 물어보고 했느냐 물으니, 난데없이 저희들에게 민주주의를 배우라 하고, 자신의 잘못을 묻는다고, 찌질한 정당이라 하고,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낸다고, 자신이 무서워서라니, 그렇게 두려운 것이 많고 찌질해서야, 어찌 정치를 한다 하고, 이 나라의 대권을 꿈꾸며, 무슨 낯으로 국민의 심판 앞에 서려하는가? 그렇게 주제를 비켜가며,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념을 내세우던 자들이 이론에 밀리고, 내세울 주장이 없을 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흔히 써먹던 수법인데, 그러한 수법은 어디에서 학습했으며, 그런 수법에 능통한 그는 과연 누구인가?
무슨 잘못이 많고 두려운 것이 많아, 단 한 번도 진실하지 못하는가? 그들이 간판으로 이용해 먹었던 그 철없던 낭만은 그래도, 너무 솔직한 것이 탈이었잖은가? 그 철없고 솔직한 낭만이 스스로가 방패막이로 선택되고, 철저히 간판으로 이용당한 줄 알았다면, 그 가는 길이 얼마나 통탄스러웠겠는가?! 끝없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으면, 한없이 에너지를 내뿜는 화이트홀이 있고, 영원히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시공간을 연결하는 웜홀이 있는 것이 우주자연계의 이치이듯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인간사가 아니던가? 그래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사이에도, 이합집산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정치판이 아니던가? 더구나 나라경영을 적에게까지 의논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또한 사람,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부름이 있으면, 그때에 가서 대권도전에 대한 뜻을 밝히겠다.” 이것이 지난날 수염 기르고, 한양주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새정치라는 밑도 끝도 없는 아리송한 소리로, 세상을 흔들어 놓았던 철수바람에 재빠르게 편승하여, 한양부윤 한 자리를 꿰찬 분의 대권도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변(辯)이다. 과연 생긴 대로 논다더니, 평소 놀음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답변이다.
희언농사(戱言弄辭)로 주제를 비켜가며 두려운 이목(耳目)을 돌리려 하고, 어느 곳과 어느 경우이든, 영 발을 빼지 않고 한 다리를 걸쳐놓고, 슬슬 안개를 피우고 연막을 치며, 언제나 말끝에 아리송한 여지를 남겨놓고서, 언제든지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고, 손바닥 뒤집듯 처세를 달리하려는 준비를 해놓는 것이, 여우같은 정치인들의 기본 책략이고, 필히 갖추어야 할 기본 술수가 아닌가!? 그러고서도 나라가 혼란하고 위급할 때는, 꼬리를 감추고 숨어들어 숨죽이는 것이 그들이 아닌가!?
시대적 요구는 시절민의(時節民意)이고, 국민의 부름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시절민의에 의한 올바른 선택이 곧 국민의 부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국민의 부름을 받아, 국민의 신뢰와 함께 국정의 전권을 부여받은 사람이야말로, 진정 국가를 통치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시대적 요구는 이와 같은 역겨운 희언농사를 앞세워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자들과, 정치판의 모리배(謀利輩)들을 몰아내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고, 국민의 부름은 이러한 자들의 간책모사(奸策謀事)에 속아, 왜곡되지 않은 민의에 의한 올바르고 정의로운 선택이 곧 국민의 부름이다.
누구든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부름을 빙자하여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고, 신성한 국민의 주권행사를 방해하려는 자들은, 이제부터는 이 나라 정치판에서 마땅히 퇴출되어야 한다. 몇 안되는 자기들끼리의 요구와 자기들끼리의 부름을 내세워, 시대의 요구와 국민의 부름으로 호도(糊塗)하여 국민을 기만하고, 한 가닥의 진실함도 없이, 간교한 마음으로 강상풍도(綱常風度)를 어지럽히고, 간언요설(奸言妖說)로 현혹하여 국민의 선택을 어긋나게 하려는 무리들은 이제, 선택의 자리에 세울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심판대에 세워야만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