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화요일

여의도살롱 - 54


<‘님’이라는 글자에>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같은 인생사’. 이 말은 한때 유행되고, 지금도 널리 불리어지는 대중가요의 한 구절이다. 말 그대로 님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내지는, 존경하는 사람의 호칭 뒤에 붙이는 수식어(修飾語)이다. 지난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북쪽도 온통 ‘장군님’, ‘원수님’, ‘주석님’이라며 님자를 쓰니, 형평성을 맞추어 남북회담에 임하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구태여 문민정부임을 내세워 지난날의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는 핑계로, 별반 사랑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 대통령에게 님자를 강제로 쓰게 한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의 호칭 뒤에 붙이는 수식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님도 아니고, 남도 아닌 어정쩡한 님으로 불리어왔다.

그리고 그것도 어느 때 부터인가 그 님자도 아예 빼버리고, 이 땅에서 대통령 위에 군림하면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는 국회와 언론에서는, 평소에는 ‘대통령이 어떻고’를 쓰다가, 대통령을 욕보이고 깔아뭉갤 의도가 있을 때만 ‘대통령께서 어떻게 하시고’를 쓰며, 저희들 나름대로는 제법 격식을 갖추어 공식적으로 욕을 보인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국민에 의하여 선택되었기에, 그 지위에 걸맞게 ‘대통령각하’, ‘수상각하’, ‘여왕폐하’, ‘왕세자전하’라는 호칭과 수식어를 사용하며, 깍듯이 공식적인 예우를 다한다. 그런 모든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권위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그런 수식어를 사용하며, 존중의 예를 다하는가? 누구든 스스로가 선택하였으면, 최소한의 공식적인 예우는 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홍길동이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대감으로 불렀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니 대한민국국민이 홍길동이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호칭 뒤에 왜 님자를 붙이도록 하였으며, 마땅히 존중하여 공식적 예우로 불러야 할 각하를, 각하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였는가?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지난날의 권위주의 잔재를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이 세상에 통치자의 호칭 뒤에 오직 북한만이 쓰는 님자를, 그렇게 목매어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저지른 아이러니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는, 당사자가 현충원 뒷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도 한참이나 지났으니, 어디 알아볼 길도 막막하다.

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앞의 호칭은 자연히 존경(尊敬)하는 사람에 쓰는 경칭(敬稱)이 되고, 통상적으로 쓰는 공식적 예우인 각하(閣下)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대통령의 직책과 더불어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그 권위와 함께, 법적 존중(法的 尊重)의 의미를 담은 공식적 존칭(尊稱)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이 통치자에게 다 쓰는 공식수식어인 각하라는 수식어가, 마땅히 법적 지위에 걸맞게 받아야 할 존중의 의미와 더불어,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 유행가 구절과 같이, 금방 선출했을 때는 님이라는 글자가 맞을지는 몰라도, 우리나라가 3년만 지나면 그 지지율을 그대로 유지해본 나라이던가?! 그러면 도로 남이 되는 것이 대통령인 것이, 이 나라의 더럽고 치졸한 인심들이 아니던가! 이제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억지로 부르는 님이 아닌, ‘사랑하는 대통령각하! 존경하는 대통령각하!’라는 소리가 통상어가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