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시(察市)>
대통령께서 대구의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쓸쓸히 다녀가시며,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보였다 하니, 만감(萬感)이 교차(交叉)하는 그 비통(悲痛)하고 통절(痛切)한 심정이야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어리석은 시세(時世)를 눈앞에 두고 보니, 나라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심정 못지않게, 보는 이의 허물도 참담(慘憺)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 땅의 국민된 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치도(治道)를 받들어 함께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자칫하면 눈앞에 다가온 통일의 호기(好機)마저 놓칠 판이니, 이 땅에 몸담은 허물된 자로서 무어라 할 말이 있겠는가!
대의(大義)가 극명(克明)한 대명천지(大明天地)에도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니, 앞으로 이 땅에는 간악(奸惡)함이 도(度)를 넘어, 흉포(凶暴)함이 난무(亂舞)할 것이니, 파괴하려는 무리들과 지키려는 이들 간의 충돌(衝突)이 연이어지고, 피비린내 나는 환란(患亂)이 끝이 없을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 아니겠는가!? 천지사방을 둘러보아도 한 자락 뜻 펼칠 곳이 없고, 이루어 마땅히 베풀 곳이 없으니, 금수(禽獸)의 땅에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애쓰겠는가!? 참으로 부끄러운 예토(穢土)요, 한걸음 발 내디딜 곳 없는 막막국토(漠漠國土)로다! 이제는 모두가 공생공사(共生共死)인가? 아니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인가를 결정지어야 할 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