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여의도살롱 - 82


<대통령각하! 죄송합니다.>

시절(時節)이 수상(殊常)하니, 천의(天意)는 다정(多情)하여 천하에 혜무(惠撫)의 손길을 드리우는데, 몽매(蒙昧)한 민(民)이 정의로우신 치도(治道)를 받들어 함께하지 못하니, 이것을 두고 옛 사람들은 망국지조(亡國之兆)요 계세(季世)의 기미(機微)라 하였는가봅니다. 나라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시절과 시운(時運)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하였으니, 사람이 애써 뜻을 펼칠 자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 뜻을 함께할 사람을 얻고, 그 뜻을 펼칠 때를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날 각하의 선친(先親)께서는 뜻을 펼칠 자리를 얻으셨고, 그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얻으셨고, 그 뜻을 펼칠 때를 만났으니, 세계 최빈국(最貧國)이었던 이 나라를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을 이루는 터전을 이루었는가봅니다. 그러니 세상은 그 휘명(諱名) 뒤에 영웅(英雄)이라는 수식어(修飾語)를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각하께서도 세상이 다 미쳐가는 이 난세(亂世)에, 불의(不義) 앞에서도 의연(毅然)하시고, 흉악한 간도(奸盜)들의 발호기세(跋扈氣勢) 앞에서도 당당(堂堂)하시니, 이미 세상의 정의지심(正義至心)들은 각하를 위하여 충절(忠節)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물줄기가 십년 세월도 돌아왔는데, 몇 개월 쉬어간들 무엇이 대수이겠습니까!? 다만 이 나라 교육의 만년대계(萬年大計)를 위하여 추진(推進)하시던, 교육개혁을 이루지 못할까 그것이 통탄(痛歎)스러울 뿐입니다. 교육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간악(奸惡)한 무리들의 그 영악(獰惡)함이야, 이 나라 수천 년 역사에서 이미 수없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 난국(難局)에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시국선언(時局宣言)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선동(煽動)하고, 불의(不義)한 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호도(糊塗)와 유언비어(流言蜚語)로 혹세무민(惑世誣民)에 앞장선 자들이, 이 나라의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흉도(兇盜)의 무리들이고, 언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간도(奸徒)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진실한 이치(理致)이고, 진실한 이치는 만고(萬古)에 변치 않는 것이 또한 진실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지난날 세상중생들을 위하여 저자에 손을 드리우시던 분들은, 업(業)을 지어 공덕(功德)으로 삼는다 하였으니, 시절따라 그 방편(方便)이 한결같을 수야 있겠습니까? 하물며 중생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초(民草)들의 위국지심(爲國至心)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십만을 거두고, 혹은 이십만을 거두어 이 나라 오천만 국민을 살리고, 팔천만 동포를 살려 국가의 만년대계를 이룰 수 있다면, 비록 필부(匹夫)의 만용(蠻勇)인들 어찌 주저함이 있겠습니까? 대명천지(大明天地) 백주(白晝)에 불의의 무리들이 사직(社稷)을 찬탈(簒奪)하고, 또다시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려 하니, 이러한 불의 앞에서, 힘없고 어리석은 일개 민초인들 어찌 신명(身命)을 아껴 주저하겠습니까? 불의(不義)가 민의(民意)를 앞세워 불의(不意)도 민의라 주장한다면, 정의(正義)로운 정의(正意)의 민의도 당연히 이 나라 백성의 민의가 아니겠습니까? 호국(護國)을 숙명(宿命)으로 삼으니 대의간성(大義干城)이요, 지국(持國)을 천명(天命)으로 삼으니 동량지재(棟梁之材)라 하지 않았습니까?

통절(痛切)한 심회(心懷)야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마는, 면목(面目)이 없고 또한 후일을 기약(期約)하자니, 참으로 죄송(罪悚)하고 송구(悚懼)스러움을 필설(筆舌)로 다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늘 강녕(康寧)하시고, 의연히 자리를 지키시며, 이 땅의 정의로운 민초들의 호국지심(護國至心)과 행동하는 정의와 실천(實踐)하는 양심(良心)들을 지켜봐 주십시오.

2016년 12월 9일 병신년국치일(丙申年國恥日)에, 서른다섯 민초가 삼가 이 글을 전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