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몽(痴夢) 안 얼수(安 臲秀) 선생께 드리는 고언(苦言)>
부지일면식(不知一面識)이나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몇 마디 흉중함언(胸中含言)을 토(吐)하고자 합니다. 선생께서 처음 착한 동네 철수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때, 모두가 생각하기를, 지금 세상에도 저렇게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있었는가 하고 감탄하였던, 지난날 세간의 평판(評判)은 선생 본인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후로 선생의 행보(行步)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난데없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시골의사라는 야리끼리한 사람이 들러붙고, 곧이어 치의(緇衣)를 입은 문어대가리가 착 들러붙고, 이어서 mentor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들러붙더니, 뜬금없이 정치를 입에 담고, 정치를 입에 담자마자 마치 한성부윤(漢城府尹)은 따 놓은 당상이지만, 나같이 큰 뜻을 가진 사람에게 성에 차겠느냐며, 통 크게 교호(狡狐) 박 선생에게 양보한다는 식으로 내어주더니, 곧이어 대권도전에도 나 같은 대인이 어찌 일개 아녀자(?)와 겨루겠느냐는 식으로, 도전권을 적도(赤盜) 문 선생에게 양보하는 호기(豪氣)를 부리시더니, 어찌어찌 하다가 효용(效用)가치가 떨어지니 홀로 외로우시다가, 마침내 신산(神算)이라 이름난 희대(稀代)의 간물(奸物), 학랑(虐狼) 박 견원(朴 犬猿) 선생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참으로 희한하게도 남의 향우회(鄕友會) 여의도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마침내 지부장까지 역임(歷任)하시더니, 이내 향우회결성의 효용가치가 다하였으니, 학랑 박 선생의 계책대로 그 자리는 학랑 선생에게 물려주듯 빼앗기고, 학랑이 물어다 준 대권이라는 먹이를 위해, 생지사지(生地死地)를 분간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 아닙니까?
학랑이 누구이고, 그의 휘하(麾下)들이 어떤 무리들입니까? 한번 물면 절대로 그냥은 놓아주지 않는 것이 그들 무리가 아닙니까? 속설에 “깡패의 도움과 양아치의 돈은 절대 공짜가 없다.”하지 않습니까? 짐작하건데, 이미 치몽 선생께서도 학랑과 그의 무리들에게 얽히고 물려서,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한번 빨대를 꽂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 그들의 속성(俗性)이고, 본성(本性)인 것을 몰랐습니까? 거머리가 배가 볼록하도록 피를 빤 뒤에야 절로 떨어져 나가자빠지듯, 그들도 아마 선생에게 꽂은 빨대를 이용하여 빨고 또 빨아대며, 각자의 그릇대로 양껏 채울 것을 다 채운 뒤에야, 걸레처럼 후줄근해진 치몽 선생을 선심 쓰듯 놓아줄 요량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물정이 어두운 선생께서는 지금, 학랑의 조언(助言)대로 해보니 모든 것이 척척 들어맞는 것 같고, 학랑 같은 제대로 된 정치인에게 조련(調練)을 받으니, 이제 내가 정말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고, 비로소 이제 내가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구나 하는, 우쭐한 마음으로 착각(錯覺)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뽕을 하던 뽕쟁이가 어찌어찌하여 줄을 잡아 공급책으로 승격하여, 인생 막가는 길로 접어들 때의 기분과 별반 다름이 없고, 밤거리에 꽃 팔던 아가씨가 클럽(?)소속을 벗어나, 프리랜서로 진출할 때의 기분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뽕도 한번으로 시작하여 이번만 하고 하다가, 끝내는 마약공급책으로 나서는 것이고, 몸 파는 짓도 한번으로 시작하여 끝내는 프리랜서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아차! 한번 잘못 발을 들이면, 몸 버리고 인생조지는 것은 잠시잠깐입니다.
몸 버리고 인생 조지는 일이 어디 처음부터 그런 것입니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하였으니, 첫발을 잘못 내딛으니 자연히 가는 길이 잘못되는 것이 아닙니까? 간악(奸惡)하고 간교(奸巧)하고 간특(姦慝)하고 간활(奸猾)한 무리들은, 상대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여, 한번 문 먹이는 절대 놓아주지 않는 것이 그들이 가진 유일(唯一)한 재주입니다. 오죽하면 호(號)가 ‘사납고 잔인한 이리’라는 뜻의 학랑(虐狼)이고, 이름이 ‘개 같은 원숭이’라는 뜻의 견원(犬猿)이겠습니까? 그러나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모든 병에는 병에 맞는 약이 있다.”하지 않았습니까? 본시 간악하고, 간교하고, 간특하고, 간활한 무리들일수록 겁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도끼를 들고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달려드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세상천지를 모르는 얼치기같이 막무가내(莫無可奈)로 엉겨 붙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전자(前者)는 치몽선생의 전문이 아니고, 후자(後者)가 치몽선생께 합당한 것 같으니, 뜻이 있으시다면 한번 시험해 보시면 틀림없이 큰 효험(效驗)을 볼 것입니다. 간사(奸詐)한 무리들의 꼬임으로, ‘새정치’라는 밑도 끝도 없는 모호(模糊)하고 아리송한 것을 들고 나와, ‘들러리 전문정치’, ‘남 좋은 일 전문정치’를 표방(標榜)하며, 가는 곳마다 호구짓을 하시니, 세상이 모두 ‘얼치기 철수’라는 말로 ‘얼수’라 부르지 않습니까? 세상이 다 ‘얼치기’라 하는데, 어느 곳에서는 ‘강철수’라 불러주니 그것이 참인 줄 알고, 목소리를 높이는 뒷배경마다 학랑선생이 흐뭇하게 미소를 날리며 서 있으니,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고, 그 미소가 치몽선생을 위한 미소로 착각하는 것입니까? 꿈속에서 꿈을 꾸다 깨어나면, 그 자리가 꿈속인 줄 모르고, 이제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꿈속에 살며, 누구도 깨울 수 없는 영원한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사나이 삼세판이니, 한번 속아 교호(狡狐) 박 선생(朴 先生)을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앉히는 실수를 저질렀고, 두번 속아 적도(赤徒) 문 죄인(文 罪人)에게 표를 몰아주어 착각을 심어주고, 기고만장(氣高萬丈)을 꿈꾸게 하였으며, 세번 속아 남의 향우회에 들어가, 호남향우회 여의도지부를 만들어 지부장까지 역임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희극을 연출하였으니, 이제는 삼세판이 다하고 마지막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니, 이왕지사(已往之事) 버린 몸이 아닙니까? 버린 몸 아껴 무엇에 쓰시려 합니까? 이제 나라를 위해 한번 써보십시오. 그러면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또다시 적도(賊徒)들의 손에 넘어가도록 두어야겠습니까? 지난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촉석루 앞 바위 위에서 왜장의 몸을 껴안고, 남강(南江)의 물결에 몸을 던져 만고(萬古)에 의기(義氣)를 남긴 의기논개(義妓論介)처럼, 선생께서도 그동안 저지른 치행(癡行)과 국민을 실망케 한 허물을 속죄(贖罪)하는 의미에서, 이번 대권레이스에서는 죽기 살기로 완주(完走)하여, 적도(赤徒) 문 선생(文 先生)의 허리를 부둥켜안든, 충청도의 노복(盧僕) 안 선생(安 先生)을 끌어안든, 모두 동귀어진(同歸於盡)하여 역사의 물결 속으로 잠재우고,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각오로 일신면모(一新面貌)하여 후일을 도모(圖謀)하고, 이 땅의 역사의 물줄기가 바로 흐르게 하는데 일조(一助)해 주신다면, 귀문(貴門)의 영광(榮光)이요, 사직(社稷)의 다행(多幸)이며, 이 나라 만민(萬民)의 홍복(洪福)이 아니겠습니까? 전도(前途)를 위해 축복은 드리지 못하겠으나, 부디 가시는 길에 더 이상의 어두움은 없기를 빌겠습니다.
丁酉年 正月 上旬 某日 永川後生 李 學徒 謹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