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루삼문(門樓三問)>
지난날 20대 초반에 참으로 분에 넘치는 광영(光榮)이 있어, 3년간 현촉산(玄燭山) 백청노사(白靑老師)를 시봉(侍奉)하는 인연이 있었다. 모신 세월은 3년이었고, 봄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물음은 세 번이었으나, 그것으로 일호(一毫)의 남음도 모자람도 없었으니, 그 은혜가 만세(萬歲)에 사무친다.
처음 찾아 뵈옵는 날, 이미 해는 산마루를 넘은 때라, 급히 발길을 재촉하여 누대(樓臺) 앞 108계단을 중간쯤 올라가는데, 저 높은 덕휘루(德輝樓) 난간에 서서 낭랑(朗朗)히 웃으시며, “오느냐!?” 하시더니, 누대에 올라 가만히 합장(合掌)하니, “어찌 이리 늦었느냐!?” 하시고서, “왔으니 같이 한번 살아보자!” 하시고는 그 후로는 단 한 말씀도 없으셨다.
늦게 온 이들은 너는 무슨 경을 잃고, 너는 무슨 소임을 하고, 때때로 너는 어느 큰절 수계산림(受戒山林)에 가고 하시면서도, 한 말씀도 내리는 바가 없으니, 다만 하는 일이라고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공양 짓고, 소제(掃除)하고, 나무하고, 불 때고, 철따라 절기에 맞게 씨 뿌리고 거두며, 밭일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밤 삼경에, 덕휘루 난간에 서서 달을 보고 있는데, 노사께서 나오시어 등 뒤에서 “달을 보느냐!?” 하시는 물음에, 보았다 해도 빗나가고 보지 못했다 해도 도리가 아니니, 묵묵금월(黙黙噙月) 합장으로 답을 대신하니, “오늘 달은 유난히도 밝구나!” 하신다. 그것이 2년 만에 하신 유일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산을 내려오는 날, 누대에 서서 합장하니, “가느냐!?” 하시며, “가서 시주 많이 받아오너라!” 하신 말씀이, 3년 동안 모시면서 문루(門樓)에서 나눈 대화의 전부였으니, 처음에는 섭섭하고, 그 다음에는 의아하였으나, 그 후에는 가만히 노심초사(勞心焦思)로 베푸신 은혜를 알았으니, 그 사무치는 은혜는 감당할 길이 없다.
노사께서 베푸신 그 풍도(風度)가 바로, 지난날 큰스님들께서 보여주시던 인연을 제접(提接)하는 수단이었으니, 이제는 옛 고향의 어른들이나, 옛 절가의 어른들이나,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옛 어른들의 고절(高絶)한 풍도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자리 눈앞에 허물만이 가득하다.
아만(我慢)이 높아 목소리가 크고, 교악(狡惡)함이 넘쳐 권모술수(權謀術數)가 가히 제천(諸天)을 속일 정도가 되어야 큰사람이라 하고, TV화면을 통해 공덕주(功德主) 모시고, 동참시주(同參施主) 모신다며, 이 계좌(計座)로 돈 보내고, 저 ARS번호를 눌러 동참하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아야, 큰스님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시절이 처량(凄凉)하여 검은 기운이 세상을 뒤덮으니, 붉은 안개 누런 먼지가 조석(朝夕)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속가(俗家)이든 승가(僧家)이든 높고 큰집은 모두 도둑의 소굴이 되고, 불한당(不汗黨)의 처소가 되었으니, 흉도(凶徒)들이 가는 길이 대의정로(大義正路)요, 오직 나에게 이익됨이 정의지로(正義之路)이다.
삼독(三毒)에 젖어들어 가늠하는 바가 전혀 없고, 명척(明尺)은 때가 묻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음습(陰濕)한 기운이 천지를 뒤덮어도 아연부동(啞然不動)이고, 사방에 요사(妖邪)스러운 깃발이 나부껴도 멍하니 눈만 껌벅이니, 흑귀적괴(黑鬼赤怪)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사람을 희롱(戱弄)한다.
이제,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깨어나지 못할 꿈을 꾸기 시작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다. 눈멀고 귀먹었으니 뇌성벽력(雷聲霹靂)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마는, 고비마다 때마다 큰 인연소식이 있어 지금 눈앞이 역연(歷然)하니, 능히 겁화(劫火)를 감당하여 허물을 씻고자 하나, 분골쇄신(粉骨碎身) 분구소신(焚軀燒身) 함께할 공덕주와 동참시주들은 어디에 있는가!!?
<낙수풍운 객원 칼럼니스트 - 8, 작성 - 2017년 7월 24일(음력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