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낙수풍운(洛水風雲) - 68


<망령이 나도 원로는 원로인가!?>

출간을 하지 않으면 무슨 대역죄인(大逆罪人)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원로(元老)들께서 너도 나도 회고록(回顧錄)과 자서전(自敍傳)을 출간하신다. 이제 갈 때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한창 휘젓고 다니던 당시의 시대상황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써놓은 내용들이 하나같이, 망령(妄靈)이 난 노인네들의 넋두리 같은 내용이다. 이미 세상이 다 잊은 시절이고, 이미 세상이 다 잊고 사는 사람들인데, 구태여 망령을 부리면서까지, 끝까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무슨 심사(心思)인가!? 세상이 다 미쳐 돌아가고 시절조차 망령이 드니, 거기에 원로의 몫으로, 하나라도 더 보태자는 심산(心算)인가!? 그저 조용히 말 없이 남은 세월을 보내다가 소리소문 없이 가더라도, 해야 할 분(分)을 다하지 못함을 왜 모르는가!?

이 나라와 이 땅을 위해 무엇을 보태고 희생(犧牲)하였기에, 너도나도 회고록인가!? 올바른 정신이라면, 밟아온 자취 되돌아보면 회한(悔恨)도 많았을 터, 어찌 참회록(懺悔錄) 한 줄 쓰는 사람이 없는가!? 참회는 고사(姑捨)하고, 어찌 모두가 그렇게 한 가닥 미안함도 없는가!? 대쪽도 말라붙으니 그저 불쏘시개에 불과하고, 의리의 돌쇠도 남은 것은 원망 섞인 넋두리 뿐이니, 온전한 정신으로 왔다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모두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내세우며 한 시절을 구가(謳歌)했단 말인가! 어찌 모두가 하고많은 옛 성현(聖賢)들의 경전을, 한낱 고름 닦은 휴지조각보다 못하게 만드는가!? 이제부터는 사전(事典)에 원로라는 말뜻을 무어라고 실어야 하는가!?

참담(慘憺)한 난망계세(難望季世)에 뜻 붙일 곳 없어, 발길을 돌리려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노랗게 말라비틀어진 새싹들 뿐이고, 망령든 원로들 뿐이니, 이제 어디로 행로(行路)를 정해야 하는가!? 판을 뒤엎고 새판을 짜야하는가! 아니면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 씨앗을 뿌려야 하는가! 시대는 혼망(昏忘)하고 시절은 난망(難望)이니, 젊음이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이제, 가슴에 새겼던 한뜻을 어디에 묻어야만 하는가!? 사랑이 크면 미움이 크고, 미움이 지극(至極)하면 연민(憐愍)이 일고, 연민이 깊으면 자비(慈悲)의 문이 열리고, 자비의 땅에는 새로이 자애(慈愛)가 싹튼다 하였던가? 이호우(李鎬雨) 선생의 옛 노래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작성 - 2017년 9월 11일(음력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