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사유(不知事由)>
원원고금(源源古今) 유장세월(悠長歲月)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까닭 없이 봄을 슬퍼하고, 가을을 서러워하던 시인묵객(詩人墨客)들도, 그 까닭을 차마 모른다 하였으니, 인연(因緣) 따라 고루거각(高樓巨閣)에 오르기도 하고, 더러는 풍찬노숙(風餐露宿)도 마다 않고, 만물제인(萬物諸因)의 속내를 낱낱이 밝게 살피고서도, 어찌하여 슬픔도 서러움도 그저 까닭 없음만을 노래하였던가!?
그러나 만유(萬有)가 드나드는 문턱에 억만 가지 인유(因由)가 있었으니, 어찌 까닭이야 없었고, 그 까닭을 몰랐겠는가마는, 그저 까닭 없이 수수(愁愁)하고 처연(凄然)함이, 까닭 모를 까닭 때문이었음을 철증(徹證)하였기에, 아는 체를 할 도리가 없었고, 설혹(設或) 아는 체를 하여도, 짐작조차 못하여 망망부지(茫茫不知)이니, 아는 체를 못하였을 뿐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알고 모름도 부질없음이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몰랐던가!?
천의준명(天意峻命)이 지엄(至嚴)하고, 천하창생(天下蒼生)의 존망(存亡)이 매였으니, 용광로(鎔鑛爐)에 앉아서도 묵묵적적(黙黙寂寂)이요, 준절의기(峻節義氣)가 고매(高邁)하니 도산검림(刀山劍林)에서도 묵묵금월(黙黙噙月)이 아니었던가!? 청고(淸高)한 기풍(氣風)이 장하고 의연(毅然)하니, 억만 세에 길이 빛날 덕(德)이로다. 하염없이 주인 없는 북악(北岳)을 바라보며, 중추절(仲秋節) 이 가을이 까닭 없이 서러운 것도 그런 연유(緣由)이던가!?
<작성 - 2017년 10월 4일(음력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