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가슴에 봉조지국(捧祖持國)을 품고, 위국애민(爲國愛民)을 대의(大義)로 삼은 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치욕(恥辱)의 세월을 감내(堪耐)하는데, 머리에 탐명욕리(貪名慾利)만 가득하여 추권종세(追權從勢)에 목을 매는 탐학(貪虐)의 무리들은, 찬역(簒逆)의 간도(奸徒)들과 어울려 희희낙락(喜喜樂樂)이니, 금수강산(錦繡江山)은 빛을 잃고, 화려강토(華麗疆土)는 시름하여 난망지세(難望之世)이다.
쳐다보고 와글대며 욕도 하고 칭찬도 하는 것은 거기가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몇몇 안 되는 저희들 패거리들에서 나오는 지지율(支持率)을 국민의 지지율로 포장(包裝)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모두 주구나팔수들의 연주로 가리니, 구심점은 저희들만의 구심점이고, 국민들의 외면(外面)과 무관심(無關心)은 점점 늘어난다. 팥죽이 상하면 죽 따로 새알 따로 이듯이, 나라와 사회도 병이 들고 상하면, 그와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원자도 양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전자가 돌며, 양자와 전자의 균형을 중성자가 적절히 control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며, 양자와 전자의 힘의 사이를 중성자가 과도(過度)하게 막아버리면, 원자의 상태는 항상 불안정하게 되고, 거기에 약간의 중성자라도 더 투입(投入)되면, 원자핵이 분열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원자핵의 분열은 낮은 단계의 원자를 남기고, 나머지는 엄청난 에너지로 발산되어 주위를 파괴(破壞)시킨다.
세상의 이치도 이와 별반(別般) 다를 것이 없다. 이치는 어디서나 같은 것이 이치이다. 나라도 구심점을 잃으면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는다. 감당할 능력도 없이 알량한 이념으로 일국(一國)의 치세(治世)를 넘보는 것은 죄악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모르고, 스스로의 위치를 모르면서 과도한 욕심을 내는 것은,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의 신명(身命)도 단축(短縮)한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그릇들이 있어 각각 제 역할(役割)을 한다. 간장 종지는 간장을 담는 역할을 하고, 크고 작은 쟁반들도 각각의 소임이 있고, 국그릇과 밥그릇도 각각 제 역할을 하고, 물동이는 물을 담고, 쌀독은 쌀을 담는다. 그러나 큰독들은 가득히 채워 놓으면 크고 작은 그릇들이 와서 너도나도 퍼내어 간다. 그러므로 큰독들은 채워질 때는 넉넉하고, 비워지면 항상 아쉽고 허전하다. 그것은 큰독이 모든 그릇들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간장종지에 기름간장을 담기도 하고, 양념간장을 담기도 하며, 국사발에 된장국을 담기도 하고, 고깃국을 담기도 하며, 밥식기에 보리밥을 담기도 하고, 찰밥을 담기도 하며, 쟁반에 나물무침을 담기도 하고, 화려(華麗)한 요리(料理)들을 담기도 하는 것은, 각자 그릇들의 능력(能力)이고 지은 바 시절복운(時節福運)이며, 모든 것을 담아서 넉넉하게 베푸는 큰독은 타고난 능력이고, 거역(拒逆)할 수 없는 소임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릇은, 간장을 만나면 간장종지가 되고, 밥을 만나면 밥식기가 되고, 국을 만나면 국사발이 되고, 쌀을 만나면 쌀독이 되고, 물을 만나면 물동이가 되며, 천하(天下)를 만나면 천하를 담는 큰독이 되는 그릇이다. 무릇 그릇은 이러한 그릇이 아니라면, 본분을 벗어나 다른 것을 기웃거려서는 안 되며, 더구나 나라를 넘보거나 천하를 탐낸다면, 이는 만고(萬古)의 역자(逆者)가 되어, 그 추(醜)한 이름을 길이 세상에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작성 - 2017년 10월 9일(음력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