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도(風度)>
雨訖(歇)長堤草色多 우흘(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연년첨록파
비 그친 긴 강둑에 풀빛 더욱 완연한데
남포로 임 보내는 길 노래 더욱 슬프구나!
유구한 대동강물 어느 때에 다 마르리?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위의 글은 서경(西京) 출신으로 고려 대문장가(大文章家) 중의 한 사람인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 ?-1135)의 시(詩)이다. 정지상은 서경천도(西京遷都)를 주장하다가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반란(叛亂)을 일으킨 묘청(妙淸)의 난에 연루(連累)되어, 개경(開京) 출신의 뇌천(雷川)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이끄는 진압군(鎭壓軍)에 의하여 참살(斬殺)되었다. 김부식과 정지상은 동시대에 나란히 대문장가로 문명(文名)을 날리며 명망(名望)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난에 연루되어 참수(斬首)를 당하고, 한 사람은 난을 평정(平定)하고서 동류(同流)를 참수하였으니, 그것이 일부 사가(史家)들이 말하는 시기심(猜忌心)에 의한 모함(謀陷)이든, 정당한 처벌(處罰)이든 간에 역사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과(功過)의 시시비비(是是非非)는 어떠하든, 그 재주만큼은 높이 사서 대문장가의 반열(班列)에 올리고, 지금도 수많은 그의 글들이 전해 오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의 풍도(風度)와 지금 세상의 천박(淺薄)한 인심은 사뭇 다르다 하지 않겠는가!? 만년의 가난을 물리치고, 나라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은 그 사람의 은혜(恩惠) 속에 살면서도, 그 사람의 공적(功績)을 끌어내리기에 바쁘고, 선친(先親)의 못다 한 유업(遺業)인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자 노력하던, 그 후예(後裔)마저 온갖 모략(謀略)으로 뒤집어씌워, 끝내는 권력을 찬탈(簒奪)하는 것도 모자라 영어(囹圄)의 몸이 되게 하고서도,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오늘의 비루(鄙陋)하고 천박한 무리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하지 않겠는가!?
<작성 - 2017년 10월 9일(음력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