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풍운(洛水風雲) - 118>
<이정표(里程標)>
경허노인(鏡虛老人)이 묻되,
다비문(茶毗文) 입감(入龕)편에 “제법운운(諸法云云)하고, 여차여차(如此如此) 법문(法問)에도 기혹미연(其或未然)이면, 유안석인 제하루(有眼石人 齊下淚)요, 무언동자 암차허(無言童子 暗嗟噓)로다!” 하였는데,
“무슨 뜻이냐?” 하니,
만공수좌(滿空首座)가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들고 있던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의 화두를 버리고,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들라 한다.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 깨트리지 못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조주무자(趙州無字)인들 어찌 깨트린다 하겠는가!? 까막눈도 갈림길에 세워 놓은 것은 이정표인 줄 다 아는데, 이정표를 부여잡고 공을 들이라 하는가!?
화두가 화두인 줄 알면, 이미 간화(看話)가 아니니, 간화가 아닌 화두공안(話頭公案)은 분별의심이다. 분별하여 얻은 것은 분별해오(分別解悟)이니, 해오는 다만 이치를 밝힌 일일 뿐이다. 천상천하(天上天下)의 도리(道理)를 다 파해친다 해도, 도리로서 얻는 것은 고달픈 행로(行路)뿐이다.
생각이 일어나기도 전에 기가 막히니, 한 생각도 일어날 수 없는 눈앞의 은산철벽을 마주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무엇이 곧바로 눈앞인가!?
어찌하여 부질없이 동남서북을 해매며 허송세월(虛送歲月)인가!?
여삼세제불일시성도(與三世諸佛一時成道) 공십류군생동일열반(共十類群生同日涅槃)이니,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생일날과 제삿날이 나귀해의 한날한시요, 중중무진(重重無盡) 중중군류(衆衆群類)가 모두 한통속이로다!
<낙수풍운 객원 칼럼니스트 - 11, 작성 - 2017년 12월 6일(음력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