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錦衣還鄕)>
연작이 묻되
“무엇이 금의환향이옵니까?” 하니
홍곡이 이르되
“네 뜻이 가상(嘉尙)하다만은, 본래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데 무엇으로 금의환향을 삼으려 하느냐? 까닭 없이 홀기무명(忽起無明)하여 생사의 강물에 맡기고 부침(浮沈)을 거듭하니, 까닭 모를 그 까닭을 알리고자, 옛 노인이 서쪽에서 왔느니라.
본래 있고 없음을 여의어, 공(空)한 일체(一切)를 있다고 고집하니 누구의 허물이더냐? 무명(無明)이 다하여 삼안(三眼: 慧眼, 法, 佛眼)이 밝으면, 생사마저 번뇌(煩惱)요 망상(妄想)이니, 그러므로 무명은 아비요 번뇌는 어미라 하느니라.
어릴 적 옛 스승은 고향을 떠나 부귀공명(富貴功名)하여 비단옷 입고 금의환향하라 하였고, 스무 살 젊은 나이에 기막힌 좌절을 맛보고, 해질녘에 고향을 찾아들어 뒷동산에 올라, 고향마을 저녁연기 바라보며 상념(想念)에 잠겼을 때, 일찍이 고향을 떠났다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일평생 고향 뒷산자락에 움막을 짓고 살며 기행(奇行)을 일삼았기에, 온 문중이 미친 사람이라 여겨 의심하던 옛 거사(居士)가 소리 없이 다가와 등을 두드리며, 고향을 떠나 두루 살펴 눈을 뜨고, 조상이 물려준 몸 상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옴이 금의환향이라 하였고, 그 길로 나서 옛 자취를 더듬어 찾아 뵌 현촉산(玄燭山) 백청노사(白靑老師)께서는, 대장부(大丈夫) 일신면모(一新面貌)를 드러내어, 큰 스승의 무연자비(無緣慈悲) 동체대비(同體大悲)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베푸신 은혜를 보답함이 금의환향이라 하였느니라.” 한다.
연작이 다시 묻기도 전에 홍곡이 이르되
“비록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부촉사(咐囑事) 전할 길 없어 품어 가려 하나, 너의 의중(意中)이 간곡(懇曲)하고 그러하니, 한마디 허물을 감당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본무생사(本無生死)에 금의환향이라는 것이 가당치도 않으나, 어리석고 어리석어 고향을 떠난 바도 없이 객로(客路)를 헤매이니 어찌 하겠느냐?
의지하면 생사요, 의지함을 여의면 생사 없는 본래자리이니, 내려놓고 쉬고 또 쉬어 쉴 곳마저 다하면 마침내 이룬다 하니, 무엇에 어떻게 의지하고 있는 줄을 몰라, 아득(阿得)하고 망연(茫然)하여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고, 무엇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내려놓음은 억겁(億劫)을 짊어지고 다닌 보배덩어리를 내려놓음이요, 쉬어감은 부질없이 일으킨 염념(念念)의 흐름을 멈추고 업식반연(業識攀緣)을 쉬는 것이니, 내려놓고 쉬어가는 세세(細細)한 안배(按配)는 지어온 바가 다르고, 쌓아온 바가 사람마다 다르니, 일일이 열거(列擧)할 수는 없으나, 다만 의지하여 닦는다 하고 구하면 생사요, 의지함을 여의어 놓아버리고 쉬어버리면 본래 일 없는 자리이니라.” 한다.
무연자비 동체대비 일대사인연이라!
황금소 진창(泥濘이녕, 塗炭도탄)에 들어가니 자취 묘연하고
범음(梵音)은 원음(元音)이라!
가을바람 옥피리소리 곧바로 만겹 관문을 꿰뚫는다.
창공도 창공경계(蒼空境界)이고 허공도 허공경계(虛空境界)이니
승묘도 승묘경계(勝妙境界)이고 십지만심(十地滿心)도 눈뜬 당달이라.
금학일성(金鶴一聲)은 아득히 하늘밖에 사무치도다.
<작성 - 2018년 7월 16일(음력 6월 4일)>